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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 한 그릇"

큰 아이가 유치원을 다닐 때 나는 집에서 부업을 했었다. 그때 작은 아이는 아직 아기였고 남편이 혼자 벌어 오는 돈은 많지 않아서, 소소한 일감을 찾아 반찬값이라고 하려고 시작한 일이었다. 이것저것 다양한 부업을 했었는데, 지금 얘기 하려는 그 즈음에는 핸드메이드 모직 코트를 바느질 하는 부업을 할 때였다. 손바느질을 하는 일이다 보니 단가가 높은 편이라 주문한 날짜에 늦지 않게 열심히 바느질을 했었다. 하루는 마감이 타이트 하게 잡혀서 다음 날 점심 때까지는 할당 받아 온 옷들을 모두 바느질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는데 종일 아이 둘을 돌봐야 하다보니 마감 시간 안에 끝내기가 아무래도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할수없이 남편과 아이들이 모두 잠든 밤에 거실 쪽에 작은 스탠드를 켜놓고 밤을 새서라도 일을 끝마..

단편 소설 2024.07.03

나의 소울 푸드

나는 소울 푸드라는 말을 가끔 사용하는 편이다. 내가 말하는 소울 푸드의 의미는 내가 기분이 우울 하거나 혹은 기운이 없을 때 그것을 먹음으로써 에너지를 얻게 되는 그런 음식을 말하는데, 사전적 의미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고유 식문화, 전통적으로 미국 남부 흑인들과 관련된 음식을 말한다고 한다. 나의 소울 푸드는 떡국이다. 어릴 때 설날을 손꼽아 기다렸던 가장 큰 이유가 떡국 때문이었을 정도로 나에게 떡국은 특별한 음식이었다. 결혼을 하고 처음 맞는 설날이 됐을 때 시댁은 떡국을 안 끓이고 오로지 김치만두만 넣어 먹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물론 시어머니가 손수 빚으신 만두는 맛이 좋았지만, 시댁에서의 첫 떡국을 기대 했기에 약간의 실망감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 된다. 다행히 지금은 시댁에서도 만두 위주의..

일상 이야기 2024.07.02

저의 그림 전시회에 당신을 초대 합니다.

작년 5월쯤인가 갑자기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더랬다.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들을 보다가 문득 그것들을 그려보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 일어났다. 나는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 했을 때 미루는 성격이 못된다. 바로 일어나 다이소로 뛰어 가서 스케치북과 아크릴 물감, 수채화 물감, 여러 사이즈의 붓들, 4B연필, 지우개, 색연필, 연필깎이, 다양한 사이즈의 캔버스를 한 보따리 사들고 왔다. 나는 다소 충동적인 성격인 반면 계획적이지는 못하다. 무얼 어디에 그리고 색칠은 무엇으로 할지 피사체의 크기는 어느 정도가 좋을지 그런 계산은 1도 하지 못한다. 일단 연필을 들고 망설임 없이 선을 긋고 바로 색을 칠한다. 제일 처음 그린 건 사과였다. 마침 집에 있던 딸아이와 식탁에 마주 보고 앉아서 각자 사과를 그리기 시작했다..

일상 이야기 2024.07.01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

콩이는 2021년 1월에 딸아이가 입양 했다. 콩이 입양 전에 키우던 두 마리의 개가 모두 나이 들어 차례로 죽고, 나는 말로만 듣던 펫로스 증후군에 한동안 잠식 되어 있었다. 적어도 1년 반 이상을 사진만 봐도 울고 꿈에만 나와도 울고 그 개들이 묻힌 곳을 지나만 가도 울었다. 남동생이 그러지 말고 다른 개를 데려와 키워 보라고 권했지만, 단호하게 거절 했다. 그건 죽은 개들에 대한 배신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때 나는 죽은 개들에게 집착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딸아이가 강아지를 입양 하겠다고 했을 때 반대는 하지 않았다. 딸아이의 선택에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콩이가 왔다. 콩이라는 이름이 너무 흔한 걸 알고 있었지만, 딸아이가 붙여 준 이름이라 신경 쓰지도 않았다...

여름감기

나는 오후 1시가 되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 온다. 오늘의 도시락은 전주비빔밥과 천도 복숭아 두 알. 여름감기를 거하게 앓는 중이라 도시락에까지 신경이 써지질 않아서 쿠팡에서 파는 냉동 비빔밥을 전자렌지에 데워 왔다. 콧물이 줄줄, 잔 기침이 있고 입맛도 없지만 차 뒷 자리에 지친 몸을 누이고 꾸역꾸역 밥을 씹어 넘긴다.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감기에 걸리고 보니 만사가 무기력하다. 검은 색 모하비 한대가 내 차 옆으로 부드럽게 주차를 한다. 운전석에서 남자가 내려 트렁크를 열고 유모차를 꺼낸다. 조수석에서는 아내로 보이는 여자가 하얗고 귀여운 포메라니안을 안고 내린다. 강아지가 너무 이뻐서 나는 밥 숟가락을 내려 놓고 그들을 본다. 부부가 포메를 다루는 손길이 너무나 섬세하다. 남자는 ..

일상 이야기 2024.06.28

2. 인썸니아

우웩~ 켁~ 우왜액~ 방금 호출을 받은 1번 미어캣이 모래처럼 와르르 부서져 내리는 것을 상상하며 J는 감았던 눈을 떴다. 침대 옆 협탁에 놓아둔 핸드폰 화면을 터치해서 시간을 확인한 J는 꽥꽥 거리는 소리의 근원지가 옆 집 화장실이라는 걸 알아챘다. 옆 집에 혼자 사는 남자가 퇴근을 한 모양이었다. (오래된 아파트라서 그런건지 유난히 화장실 방음이 안돼서 J는 아침 배변 내지는 가스 배출시에는 수돗물을 틀거나 유투브 쇼츠를 켜 놓곤 했다. ) 작년까지만 해도 옆 집 남자에겐 아내와 귀여운 딸아이가 있었는데, 올 초에 아이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이사를 나가 버리고 줄곧 남자 혼자 지내는 듯 했다. 이사 가기 전 새댁으로부터 남편이 전철역 부근에서 횟집을 한다고 들었었는데, 아마도 새벽까지 영업을 하는지 보..

단편 소설 2024.06.25

1. 인썸니아

J는 다시 형광등 스위치를 켰다.오늘 밤에만 벌써 세번째 껐다 켜는 반복을 하는 중이었다. 첫번째로 스위치를 켠 건 귓가에 윙윙 거리는 모기 때문이었다. J는 모기가 1분만 소리를 참고 기다려 줬더라면 잠이 들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며 모기를 원망했다. 기어코 잡아내서 응징하고 말겠다고 생각했다. 잠들기 직전까지의 노력을 허사로 만든 모기를 그 방에서 살아 나가게 둘 수 없다고 생각한 J는 거실로 나가 붙박이장에 넣어 두었던 모기 살충제를 꺼내고 눈에 핏발을 세우고 모기를 찾기 시작했다. 형광등만으로는 모자라 핸드폰 손전등까지 켜고 사방 벽과 천장을 구석구석 훑어보고 침대 헤드 틈새와 커텐 뒤까지 치밀하게 뒤졌지만 모기는 보이지 않았다. 그도그럴것이 J의 눈은 노화로 인한 비문증(눈 앞에 먼지나 날파리..

단편 소설 2024.06.25

연이의 아킬레스건

나는 두 마리의 개와 한 마리의 고양이, 한 마리의 문조(새)와 살고 있다. 두 마리의 개는 모두 암컷으로 유기견 보호센터를 통해 각각 입양 했는데, 4살 정도로 추정되는 연이와 3살이 된 콩이 이다. 연이의 구조 당시 사진을 보면 꼬질꼬질한 노란 옷을 입고 웅크려 있는 모습이고, 엄마개와 함께 구조된 강아지였던 콩이는 안타깝게도 사진은 없다. 임시보호 중이던 동물병원으로 처음 연이를 데리러 갔을 때 연이는 우리(딸아이와 동행)가 자기를 데리러 온 걸 아는 것처럼 내 품에 찰싹 안겨 왔었다. 동물병원 직원이 말하길 " 몽쉘이는 겁도 많고 식탐도 많고, 질투도 많아요~" 병원에서 지어 준 이름이 몽쉘이었다. 롯데 몽쉘 케잌처럼 초코와 흰 색이 섞여 있어서 붙여진 이름 같았다. 연이를 데려올 당시에 집에는 ..

소풍

비가 내리는 주말, 야외주차장에 서 있는 내 애마는 깨끗하게 세수 하고 나온 아이처럼 반짝 거린다. 차 문을 열고 문짝에 우산을 받쳐 놓고 도시락 가방을 연다. 볶음밥에 달걀 후라이와 양반김 하나, 가지런히 썰어 담은 파프리카 한 통. 직원들도 평일에는 아울렛 지하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지만, 주말과 공휴일은 야외주차장에 주차를 해야 한다. 점심으로 주로 도시락을 싸 오는 나는 뒷 좌석에 거의 눞다시피 앉아 세상 편한 자세로 도시락을 먹는다. 일을 다니면서 소소하게 느끼는 행복 중에 소풍 나온 거 같은 이 시간이 포함 된다. 차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잦아 든다. 내가 도시락을 먹는 동안 만이라도 폭우처럼 쏟아져도 좋을 것을.. 다시 매장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배도 부르고, 비도 내리고, 새로 처..

일상 이야기 2024.06.22

진짜 여름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아들 아이가 차를 빌려가서 이틀째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한다. 버스를 안 타본지 이삼년은 된 거 같다. 일단 핸드폰 뒷면에 꽂혀 있는 카드가 후불 교통카드인지 확인을 하고 챙 모자를 챙겨들고 집을 나선다.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동안 6월 중순의 더위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뜨거운 햇살이 내리 꽂힌다. 버스가 도착하려면 6분이나 남았다. 버스를 기다리며 정류장 옆에 있는 상점들을 천천히 둘러 본다. 호두과자 집, 핸드폰 가게, 복권판매점, 커피숍, 과일가게. 과일 가게 좌판에 나와 있는 저 과일들은 과연 안녕한걸까? 덜 자란듯 알이 작은 대석자두와 천도 복숭아가 달궈진 에어프라이어에 들어가 있는 고통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닌지 사뭇 궁금 하다. 버스를 탄다. 내리기 편하게 뒷문 바로 앞 자리에 앉으려다가 멈칫 ..

일상 이야기 2024.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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