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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자유를 꿈꾸는 거니?

막 세탁을 마치고 나온 젖은 옷들이 빨래 건조기 안에서 천천히 말라 간다. 섬유린스의 은은한 코튼향이 집안에 가득 퍼지고, 창을 통해 들어오는 쾌적한 가을바람에 몸도 마음도 느긋해지는 휴일 오후.. 말끔히 물청소를 해 놓은 베란다의 방충망 앞에 희동이가 한참을 앉아 있다. 아파트 단지 사이로 지나가는 차들도 보고, 견주와 보폭을 맞춰 산책 중인 다른 집 강아지도 내려다보고 , 건물 사이로 날아가는 까치와 산비둘기도 구경하고, 앞 동 옥상 꼭대기에서 뱅글뱅글 돌아가는 커다란 은색 환풍기도 쳐다보고 있는 것이리라. 바깥세상을 둘러보느라 여념이 없는 토실토실한 희동이 뒷모습을 보면서 지금 어떤 생각을 하며 저러고 앉아 있을까 사뭇 궁금해진다. 방마다 다니며 서랍이란 서랍은 다 들어가 보고 선반이란 선반엔 다 ..

너희도 가을 같아.

베란다를 통해 들어오는 햇살은 며칠새 완연한 가을 햇살로 바뀌어 있다. 가을이라고 어디에 쓰여 있는 건 아니지만 뭔지 모르게 가을의 햇살이다. 지난주는 명절 특수로 인해 몹시도 바쁜 날들이었다. 연휴 동안 여유롭게 쇼핑을 나오는 사람들을 위해 추석도 쉬지 못하고 꼬박 일했던 동료들 덕분에 공포의 긴 시간들을 무사히 지나온 것에 감사한다. 오늘은 오랜만에 맞는 휴무. 할 일은 산더미인데 지쳐있는 몸이 선뜻 일으켜지질 않는다. 조금 과장을 보태서 머리카락과 손톱, 발톱을 제외한 모든 곳이 쑤시고 아프다. 딸아이가 맛있게 끓여 놓은 김치찌개에 비벼 밥 한 공기를 게 눈 감추듯 먹고, 커피 한잔을 내리고 빛깔 좋은 햇사과 반쪽을 접시에 깎아 놓는다. 작게 자른 사과 한쪽은 잘게 다져서 북봉이 (새 ) 간식으로 ..

일상 이야기 2024.09.23

이기적인 베짱이

나는 아울렛의 푸드코트에서 일한다. 여러 명이 한 공간에서 긴 시간을 함께 해야하다보니 서로 마음 편하고 즐겁게 일하기 위해서는 쌍방 간 많은 배려와 협력이 요구 되는 곳이다. 우리 매장에는 가끔 주말알바를 나오는 사람이 있다. 평일에는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일을 한다는 그 사람은 언젠가 내게 자신의 사적인 하소연을 말한 적이 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자신을 따돌리고, 손이 느려 터지고 일을 너무 못한다며 자꾸 지적을 한다는 얘기였다. 그녀는 대체 자기가 왜 그런 대우와 지적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내가 그녀를 두둔해 주기를 바라는 뉘앙스가 느껴졌지만, 차마 가식적인 옹호는 할 수 없어서 나는 그냥 입을 다물고 말았다. 나름 사람을 많이 겪어본 내 눈에 그녀는 느리고 일을 못하는 사람이라기..

나의 가사도우미 체험기

10년간의 김치찌개 가게 사장노릇을 접고서 5개월가량 가사도우미를 해 본 적이 있다. 그 일을 꼭 해보고 싶었거나 그 일을 해야 할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 당근 알바를 뒤적이다가 청소클리너를 구하는 구인광고를 접했는데 내 집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집을 정리하고 청소해 보는 건 어떨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평소 집안을 꾸미고 쓸고 닦는 걸 좋아하다 보니 그런 호기심이 생기지 않았나 싶다. 일단 호기심이 발동하면 앞뒤 재지 않는 성격 탓에 그때에도 바로 클리너 업체에 전화를 걸었고 다음 날부터 나는 즉각 그 일을 시작했다. 앱을 통해 내가 원하는 지역에서 내가 일할 수 있는 시간과 페이를 보고 그 시간에 맞춰 고객 집을 방문하면 되는 일이었다. 기본적인 청소 매뉴얼은 유튜브로 꼼꼼히 숙지하고,..

4. a gloomy birthday

민자 씨는 기억해 내려고 애썼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새끼들에게 넉넉히 차비를 쥐어 주고, 학교 끝나면 친구들하고 붕어빵이라도 사 먹으라며 얼마 안 되는 용돈이라도 쥐어 주고 명절을 앞두고는 새 옷은 못 사줄 망정 새 양말이라도 한 짝씩 사주는 자신의 모습을 소환해 내고 싶었다. 그러나 기억이 하나씩 떠오를수록 민자 씨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아이들의 증언대로 그녀의 기억 속에도 너그러운 민자 씨는 존재하지 않았다. 스케치북을 사야 한다는 셋째의 말에 "언니한테 빌려서 가! "라고 말하는 무뚝뚝한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고, 소풍을 가는 아이들의 김밥 재료를 사면서 소시지를 집었다가 도로 내려놓는 소심한 모습이 떠올랐고, 과일장사를 하면서도 아이들에게는 늘 상품가치가 떨어진 시든 과일만 먹이는 인색한 ..

단편 소설 2024.09.10

3. a gloomy birthday

" 누나는 혼자 온 거야? " 민자 씨의 아들이 혼자 들어오는 둘째 누나를 보며 물었다. " 그래. 네 매형도 오늘 일이 늦게 끝난다고 그러고 애들도 바쁘다고 해서 말이지. 나도 사실 오기 힘든 상황이었는데 과장한테 양해를 구하고 겨우 왔다. " " 형님~ 먼 길 오느라 애 쓰셨어용." 민자 씨의 며느리가 애교 섞인 인사를 건넸고 어쨌든 올 사람은 다 온 거니까 시작하자는 큰 사위의 말에 민자 씨의 아들이 성냥을 긋고 케잌에 꽂힌 초에 불을 붙였다. " 여기 고기 좋다~ 큰 언니가 예약한 거지? " 막내딸이 묻고 " 응. 네 형부랑 전에 한번 왔었는데 괜찮길래~ 엄마도 소고기 좋아하니까.." 큰 딸이 대답했다. 고기 한 점을 입에 넣으며 평소에도 장난기가 많은 둘째가 말했다. " 좋은 고기를 보니 눈물이..

단편 소설 2024.09.10

2. a gloomy birthday

그렇게 남편을 보내고 민자 씨는 졸지에 애 넷 딸린 과부가 됐다. 남편 없이 혼자서 연탄가게를 계속해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연탄가게를 정리하고 집 가까운 곳에 자그맣게 과일 가게를 열었고 일주일에 한두 번씩 도매시장에 직접 나가 과일을 사다 팔았다. 버스 정류장 바로 앞에 있는 가게라서 쏠쏠하게 장사가 됐다. 그렇게 고생해 아이 넷을 키웠다. 대학은 못 보냈지만, 고등학교까지는 다 보낸 것 만도 대단한 일이라고 민자 씨 스스로 자부했다. 딸들은 여상(실업고등학교)을 졸업해 각자 직장생활을 하다가 결혼들을 했다. 세 딸들 결혼시킬 때 수저 한벌도 해주지 못한 게 조금은 미안했지만, 그만큼 키워 놓았으니 내 할 도리는 다 했다고 생각하는 민자 씨였다. 시원하게 때를 밀고 나온 민자 씨는 주전자 가득 끓..

단편 소설 2024.09.09

1. a gloomy birthday

민자 씨는 아침부터 들떠 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사나흘 전부터 오늘을 고대하고 있었다. 오늘은 79번째 맞는 민자 씨의 생일이고 세 딸과 아들네 식구들까지 모두 그녀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총출동하는 날이기도 했다. 가볍게 샤워를 할까 하다가 개운하게 때를 밀어야겠다고 생각한 민자 씨는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기 시작했다. "어디 보자~~ 그 소금이 어디 있더라?" 첫째 딸이 얼마 전에 사다 놓은 히말라야 입욕 소금을 떠올린 민자 씨는 욕실 수납장 안쪽에서 그것을 찾아 절반쯤 차 오른 목욕물에 한 주먹을 넣고 휘휘 저었다. 옷을 벗어 차곡차곡 접어 욕실 문 앞에 있는 빈 수건 바구니에 담아 놓고 민자 씨는 천천히 욕조에 몸을 담갔다. " 식사는 저녁 6시로 잡았는데 엄마도 괜찮지? 엄마 좋아하는 소고기 ..

단편 소설 2024.09.09

희동이의 낚싯대

희동이를 만난 지 1년이 되어간다. 남편이 운영하던 카페의 뒷동산에서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주먹만 한 희동이를 처음 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엄마 고양이가 함께 있었는데 초겨울이 되고 우리 가족이 카페를 그만둘 때가 되자 엄마 고양이가 홀연히 사라졌다. 엄마와 함께 있는 희동이 ㅠㅠ 남겨진 희동이를 집으로 데려오기로 결정했지만, 사람 손을 타본 적이 없는 야생 새끼 고양이를 과연 어떻게 잡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일단 츄르를 좀 사고 긴 막대 끝에 깃털이 달린 고양이 낚시 장난감을 사서 희동이를 유인하기로 했다. 딸아이가 인내심을 갖고 며칠간 츄르를 사료그릇에 짜주고 장난감으로 놀아주던 어느 날 드디어 희동이를 잡는데 성공은 했지만, 느닷없이 케이지에 실려 낯선 공간에 오게 된 희동이는 꽤 오랫..

그리고...

휴무인 오늘 아침은 알람을 해제해 놓고 10시 반이 넘도록 늦잠을 잤다. 밤 사이 우리 집 동물들이 협소한 내 등짝을 도움닫기 삼아 침대 위를 날라 다니고, 할짝할짝 물을 먹고 오도독 거리며 사료를 먹는 소리를 모두 들으며 가수면 상태로 자다가 새벽녘쯤 이 녀석들이 놀다 지쳐 잠들 때에 맞춰 나도 숙면에 들어갔다. 방 문 앞에 울타리를 세워놓고 방으로 통하는 베란다 통로에도 높은 수납형 의자를 놓았지만, 높이뛰기 선수인 녀석들을 막기는 쉽지 않다. 중요한 건 내가 그 일로 그다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 수면의 질보다 콩이, 연이, 희동이가 소중하니까. 집안이 어두운걸 보니 비가 올 모양이다. 쉬는 날에 내리는 비라니, 너무 좋잖아~ 캐비넷을 열어 안성탕면을 꺼내고 달걀한알을 가져와 라면을 ..

일상 이야기 2024.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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