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2. a gloomy birthday

롤리팝귀걸이 2024. 9. 9.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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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남편을 보내고 민자 씨는 졸지에 애 넷 딸린 과부가 됐다.
남편 없이 혼자서 연탄가게를 계속해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연탄가게를 정리하고 집 가까운 곳에 자그맣게 과일 가게를 열었고 일주일에 한두 번씩 도매시장에 직접 나가 과일을 사다 팔았다. 버스 정류장 바로 앞에 있는 가게라서 쏠쏠하게 장사가 됐다. 그렇게 고생해 아이 넷을 키웠다. 대학은 못 보냈지만, 고등학교까지는 다 보낸 것 만도 대단한 일이라고 민자 씨 스스로 자부했다.
딸들은 여상(실업고등학교)을 졸업해 각자 직장생활을 하다가 결혼들을 했다. 세 딸들 결혼시킬 때 수저 한벌도 해주지 못한 게 조금은 미안했지만, 그만큼 키워 놓았으니 내 할 도리는 다 했다고 생각하는 민자 씨였다.
시원하게 때를 밀고 나온 민자 씨는 주전자 가득 끓여 놓은 보리차를  벌컥벌컥 마시고 휴~한숨을 내쉬었다. 옛날 생각을 하면 늘 가슴이 답답해지는 거 같다고 민자 씨는 문득 생각했다. 민자 씨는 밥통을 열고 김이 나는 밥을 넓은 스텐 그릇에 퍼 담고 열무김치와 씻어 놓은 상추를 꺼내 비비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 아휴~ 왜 자꾸 옛날 생각이 나는 거야. 심란하게.."

저녁 5시가 조금 넘었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
셋째 사위와 셋째 딸이었다.
" 애들은? "
당연히 손주들도 함께 올 거라고 생각했던 민자 씨가 물었다. " 애들은 다 약속 있다네요. 우리만 왔어. "
" 약속? 외할머니 생일보다 중요한 약속이 있어? 아니, 1년에 한 번 있는 외할머니 생일도 안 오고 다들 어딜 갔다는 거야? "
" 아이고~ 얼마 안 있으면 추석인데 그때 보면 되지. 한 번만 넘어가줘유~~ 엄마 이번 빠마 잘 나왔네? 저번에 거기서 했어? 6시까지 식당으로 가면 되니까 화장 좀 하시고 저번에 내가 사 준 옷으로 갈아입어요. 우리가 모시고 갈게. "
아이들에 대한 핀잔이 길어질 거 같자 셋째 딸이 얼른 화제를 바꾸며 민자 씨를 안방으로 이끌었다.
못마땅한 듯 눈을 흘기며 민자 씨는 화장대 앞에 앉았다.
민자 씨가 셋째 내외와 식당에 도착했을 때 둘째 딸네를 제외한 자식들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미닫이 문이 있는 조용한 단체룸이 예약되어 있었고 커다란 테이블 위에 케잌까지 이미 세팅이 되어 있었지만 미리 약속이나 한 듯이 손주들은 한 명도 보이질 않았다.
" 아니, 왜 애들이 하나도 없어? 이제 애들은 안 데리고 다니기로 니들끼리 약속이라도 한 거야? "
" 애들이 우리보다 더 바빠요. 장모님. 학교 다니고 직장 다니고~ 요새 저희도 애들 얼굴 보기 힘들어요."
큰 사위가 말했다.
고기를 구울 불판이 들어오고 음식이 다 나왔을 때에 맞춰 둘째 딸이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 왔다.
마치 해외순방을 떠나는 영부인이라도 된 양 천천히 손을 흔들며 들어온 둘째 딸이 큰 소리로 외쳤다.
" 모두들 안녕? "
                              (3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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