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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호프"

"영화 보러 갈까?"남편이 묻는다."제목이 뭔대?"내가 묻는다."호프."호프.? 생맥주 영화는 아닐거고 Hope 인가?양동이만한 캬라멜 팝콘과 라지사이즈 콜라를 들고 영화관에 들어 가기 전까지 내가 알고 있는 정보는 고작 조인정,황정민이 출연한다는 거 뿐.영화가 시작되고 죽은 소가 나오고 동네가 불 타고 사람이 죽고..인트로가 좀 길다는 생각을 하면서 대체 뭐가 나오려고 이러지? 할 즈음.와우~~~상상하지 못한! 깜짝 놀랄만한 괴물(?)이 등장한다.그때부터 시작되는 숨 막히는 긴장감과 스릴.이거 우리나라 영화 맞아?신박한 소재다.새롭다.제법 긴 상영시간이 끝나고 후속편을 예측하게 하는 엔딩이 끝나고, 빈 팝콘용기를 들고 영화관 계단을 내려간다. "Hope" 내 개인적인 의견은.. 재밌다. 흥미롭다.왠..

일상 이야기 2026.07.18

반려개미

어느 날부턴가 베란다에 개미가 보였다.깨알같이 작고 까만 개미 한두 마리가 며칠 뒤엔 대여섯 마리가 되었고 매일 그 숫자가 조금씩 늘어나는 거 같았다. 친한 언니에게 화분에서 개미가 나오는 거 같다고 얘기하니 화분의 흙을 몽땅 버려야 할 거라고 했다. 안 그러면 나중엔 개미가 방에도 들어올 거라고 했다.그 말을 듣고도 한동안은 베란다에 나갈 때마다 눈에 띄는 작고 하찮아 보이는 개미들을 부직포 먼지떨이에 붙여 창밖으로 후후 불어 날려버리기만 했었다. 내가 날려 보낸 개미들이 낯설고 넓은 세상에서 자리 잡고 살아가긴 힘들 거라고 생각됐지만, 밟아 죽이거나 물에 떠내려 보내는 거보다는 그게 마음이 편했다.개미들이 민들레 홀씨처럼 가볍게 어디론가 날아갈 때마다 속으로 잘 가~인사를 하곤 했는데 그것 때문이었..

아빠의 일기

카톡으로 온 사진 두 장.여동생이, 돌아가신 아빠의 유품 중 하나였던 낡은 다이어리 중 일부를 찍어 보내왔다.친정집에 보관돼 있던 것을 몇 년 전 가져간 동생이 아빠가 써놓은 71년도 어느 날의 일기를 들여다보다가 글씨도 알아보기 어렵고 한문이 많이 섞여 있어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겠어서 사진으로 내게 보낸다고 했다. 변색된 낡은 종이엔 박력 넘치는 필체로 빼곡히 적어 내려간 아빠의 하루가 적혀 있었다.일기의 제목은 兄弟(형제).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그날 아빠는 작은 아빠에게 돈을 빌리러 가셨나 보다. 천천히 글자를 확대해서 읽어보니, 대학을 졸업하고 갓 대기업에 취직한 동생에게 힘이 되어 주지도 못하고 오히려 돈을 빌리러 가는 형으로서의 무거운 마음과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을 자책하는..

일상 이야기 2026.07.05

화는 습관이다.

유난히 힘들었던 오늘의 산책.두 걸음 가다 말고 돌아서 거꾸로 다섯 걸음 가고, 걷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안아달라고 조르는 청개구리 같은 연이를 보며 괜히 어금니를 꽉 깨물게 되고, 콩이는 왼쪽에서 당기고 연이는 오른쪽에서 당겨 길 한복판에서 양팔을 활짝 벌리고 오도 가도 못하는 웃긴 상황도 오늘따라 하나도 즐겁지가 않고, 하다못해 산책로 곳곳에 심어진 가시나무들이 갑자기 꼴 보기가 싫고.아놔~ 아이들이 자전거 타다가 뾰족한 가시 위로 넘어지거나 강아지들이 킁킁 냄새 맡다가 눈이라도 찔리면 어떡하려고? 이거 이거 공원 관리자를 불러~말어!시청에 민원전화를 걸어~말어!생각해 본다.오늘 나는 왜 이리 심기가 불편하지?콩이와 연이가 평소 안 하던 짓을 한 것이 있나?이 길의 섬뜩한 가시나무들이 어제는..

평화를 원해!

고양이와 개를 같이 키운다고 하면 사람들은 그 둘이 서로 잘 지내는지를 많이 묻곤 한다.내 대답은 늘 똑같은데,"잘 지내기도 하고 잘 싸우기도 해요."이다.잘 지내는 전자는 콩이와 희동이고 잘 싸우는 후자는 연이와 희동이다.연이는 평소에도 조금 까칠한 면이 있지만 유난히 희동이에게는 거칠다.마치 어떤 임무라도 부여받은 사냥꾼처럼 종일 희동이의 행적을 추적하기 바쁘다.희동이를 감시하는 연이를 제재하긴 하지만, 어느 틈엔가 방심한 희동이의 보드라운 갈색털 한 움큼을 뜯어 입에 물고 나타나기도 한다.아마도 희동이는 캣타워에서 무심히 뛰어 내려오거나 침대 밑에서 노곤하게 기지개를 켜며 나오다가 연이의 재빠른 공격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물고 있는 제법 많은 털을 보고 놀라 꺄아악~소리라도 지를 때면 연이는 ..

남편을 병원에 두고 꽃을 사러갔다.

한 달 전쯤일까,퇴근 후 저녁을 먹기 위해 식탁에 앉았는데 방으로 들어간 남편이 대학병원 이름이 적힌 종이 몇 장을 들고 나와 조심스레 내민다.최근 가슴이 뜨끔뜨끔해 정밀검사를 받았는데 심장에 있는 혈관 하나가 막혀서 혈관확장 시술을 받아야 한다고.."심각한 시술이야?""간단한 시술이야."심장혈관조영실 앞 의자에 앉은 비슷비슷한 표정의 보호자들이, 자신만 아는 *표 들어간 이름을 주시하며 자동문 옆 모니터를 일제히 올려다본다."이**님 보호자분 안으로 들어오세요."조금 긴장하며 슬리퍼로 갈아 신고 자동문 안으로 들어간다.파란 수술복을 입은 의사가 오염을 우려하고 멀찍이 서서는 꿈틀 거리는 남편의 혈관을 컴퓨터 화면에 띄우고 설명하길, 좁아진 혈관에 풍선(?)을 넣어 일단 확장시켜보고 여의치 않으면 스탠트..

일상 이야기 2026.03.20

거기 누구?

가끔 그럴 때가 있다.7층으로 가려고 1층에 멈춰있던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는데 아무도 없는 그 안에서 3층 버튼이 이미 눌려 있을 때가..흔한 일은 아니지만, 그런 경우 흠칫 놀라 주변과 천장을 두리번거리게 되곤 한다.또 이런 때도 있다.남편방의 TV소리도 꺼진 고요한 늦은 밤. 스탠드 하나 켜놓고 소파에 앉아 책을 읽거나 차를 마시고 있을 때 나른하게 졸고 있던 콩이와 연이가 느닷없이 일어나 허공 한 구석을 보고 왈왈 짖는 때가..강아지 두 마리가 빈 허공을 함께 주시하며 짖어대는 것을 보는 건 무척이나 소름 돋는 일이다.귀가 밝은 동물이니 위층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을 거라고 애써 정의 내려보지만, 나름 밝은 내 귀엔 정적뿐이었다는 게 소름 돋는 것이다. 뭐지?한 번은 같이 허공을 보며 "거기 누구 ..

일상 이야기 2026.03.19

내일은 더 행복하개.

비가 올 듯 잔뜩 흐린 토요일.점심 먹은 그릇도 그대로 두고 부랴부랴 산책을 준비한다."산책"이라는 말은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에 비로소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는 일종의 금기어라서 미리 이야기를 하지 않는대도 불구하고 두 녀석은 마치 나의 결심을 읽기라도 한 듯 기가 막히게 산책의 전조증상을 알아챈다.서랍에서 양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콩이는 신이 나서 빙글빙글 돌고 연이는 재촉의 하울링을 시작한다.3월 중순의 바람은 아직 차갑다.목에 두른 스카프를 고쳐 매고 하얗고 작은 꽃망울이 곧 터질듯 부푼 조팝나무가 있는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마주 오는 다양한 강아지들을 본다.산책로에는 강아지 없이 걷는 사람이 드물 정도로 견주들과 반려견이 정말 많다.나도 두 마리를 데리고 다니지만, 세 마리씩 산책시키는 사람도 종..

고양이의 보은?

딸아이가 캐나다로 떠나기 전까지 혼자 지내던 행복주택을 내놓기로 결정했다.떠난 지 1년이 됐고 언제 돌아올지 당분간 기약이 없는 상태라 관리비를 계속 내며 집을 비워 놓을 이유가 없어진 까닭이다.LH에 연락해 사정을 설명하고 짐을 빼기로 날짜를 정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생겨버렸다.딸아이가 내게 맡기고 간 집 열쇠 꾸러미가 분명 두 개였는데 하나가 도통 보이질 않는 것이다.도어록 키라서 분실하면 물어내는 비용이 꽤 들 거라는 남편 말에 온 집안을 이 잡듯 뒤지기 시작했다.옷걸이에 걸린 외투 주머니, 내가 가진 모든 가방들, 서랍들과 붙박이장 내부, 하다못해 베란다 창고까지 뒤져 보았지만 실종된 열쇠꾸러미는 발견되지 않았다.차에도 가보고, 주방 싱크대와 침대 밑, 강아지들 장난감 바구니까지 탈탈 터느..

공부하기 좋은 나이 쉰아홉

내가 생각하는 9는 잘 버텨냈다는 안도이며 새롭게 시작하라는 독려의 숫자.19살에서 20살로 넘어갈 때의 내 기분을 회상해 보면 '비로소 어른이 됐다! '는 기쁨이 먼저 떠오른다.대학 진학을 하지 않고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직장을 찾아야 했던 나는 돈을 벌어 최대한 빨리 독립하겠다는 기대감에 들떠 공부에 대한 미련을 쉽게 접어버렸다.어찌 보면 대학을 보낼 여유가 없다던 엄마의 말에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대학의 국문학 전공에 대한 꿈을 조용히 내려놓고 나는 월급 25만 원을 받는 첫 직장으로 씩씩하게 출근했다. 29살에 둘째 아이를 낳았다.30대가 되면 무얼 하겠다던가, 어떻게 살아보겠다는 계획이나 희망 따위를 생각할 여유가 없는 때였다.딸아이를 씻기고 밥 먹여 유치원에 보내고 장을 봐다가 반찬을 만들고..

일상 이야기 2026.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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