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6

물구나무 서기

침대 위에 앉아 고양이 낚싯대로 희동이를 부른다. 낚싯대를 요란하게 흔들어 댈수록 희동이는 더 신이 나는 모양이다. 침대 아래 깔아 놓은 카펫 위를 우다다다 뛰어다니며 낚싯대 끝에 매달린 초록색 리본을 사냥하다가, 작고 하얀 발가락 사이에 리본이 걸려들면 보란 듯이 씩씩 거리며 침대 위로 물고 올라온다. 내가 앉은 발치에 그것을 당당히 내려놓고 나를 한번 보고 이빨자국 가득한 리본을 한번 보고 어서 낚싯대를 다시 던져보라고 무언의 재촉을 한다. 점점 두둑해지는 희동이의 폭신한 뱃살이 가쁘게 숨을 몰아 쉬다가, 충분히 놀았는지 아무렇게나 리본을 뱉어 놓고 언제 뛰어다녔냐는 듯 세상 편한 자세로 잠이 든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희동이의 감겨있는 갈색 속눈썹을 조용히 들여다보다가 문득 물구나무서기를 해보고..

너도 자유를 꿈꾸는 거니?

막 세탁을 마치고 나온 젖은 옷들이 빨래 건조기 안에서 천천히 말라 간다. 섬유린스의 은은한 코튼향이 집안에 가득 퍼지고, 창을 통해 들어오는 쾌적한 가을바람에 몸도 마음도 느긋해지는 휴일 오후.. 말끔히 물청소를 해 놓은 베란다의 방충망 앞에 희동이가 한참을 앉아 있다. 아파트 단지 사이로 지나가는 차들도 보고, 견주와 보폭을 맞춰 산책 중인 다른 집 강아지도 내려다보고 , 건물 사이로 날아가는 까치와 산비둘기도 구경하고, 앞 동 옥상 꼭대기에서 뱅글뱅글 돌아가는 커다란 은색 환풍기도 쳐다보고 있는 것이리라. 바깥세상을 둘러보느라 여념이 없는 토실토실한 희동이 뒷모습을 보면서 지금 어떤 생각을 하며 저러고 앉아 있을까 사뭇 궁금해진다. 방마다 다니며 서랍이란 서랍은 다 들어가 보고 선반이란 선반엔 다 ..

너희도 가을 같아.

베란다를 통해 들어오는 햇살은 며칠새 완연한 가을 햇살로 바뀌어 있다. 가을이라고 어디에 쓰여 있는 건 아니지만 뭔지 모르게 가을의 햇살이다. 지난주는 명절 특수로 인해 몹시도 바쁜 날들이었다. 연휴 동안 여유롭게 쇼핑을 나오는 사람들을 위해 추석도 쉬지 못하고 꼬박 일했던 동료들 덕분에 공포의 긴 시간들을 무사히 지나온 것에 감사한다. 오늘은 오랜만에 맞는 휴무. 할 일은 산더미인데 지쳐있는 몸이 선뜻 일으켜지질 않는다. 조금 과장을 보태서 머리카락과 손톱, 발톱을 제외한 모든 곳이 쑤시고 아프다. 딸아이가 맛있게 끓여 놓은 김치찌개에 비벼 밥 한 공기를 게 눈 감추듯 먹고, 커피 한잔을 내리고 빛깔 좋은 햇사과 반쪽을 접시에 깎아 놓는다. 작게 자른 사과 한쪽은 잘게 다져서 북봉이 (새 ) 간식으로 ..

일상 이야기 2024.09.23

희동이의 낚싯대

희동이를 만난 지 1년이 되어간다. 남편이 운영하던 카페의 뒷동산에서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주먹만 한 희동이를 처음 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엄마 고양이가 함께 있었는데 초겨울이 되고 우리 가족이 카페를 그만둘 때가 되자 엄마 고양이가 홀연히 사라졌다. 엄마와 함께 있는 희동이 ㅠㅠ 남겨진 희동이를 집으로 데려오기로 결정했지만, 사람 손을 타본 적이 없는 야생 새끼 고양이를 과연 어떻게 잡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일단 츄르를 좀 사고 긴 막대 끝에 깃털이 달린 고양이 낚시 장난감을 사서 희동이를 유인하기로 했다. 딸아이가 인내심을 갖고 며칠간 츄르를 사료그릇에 짜주고 장난감으로 놀아주던 어느 날 드디어 희동이를 잡는데 성공은 했지만, 느닷없이 케이지에 실려 낯선 공간에 오게 된 희동이는 꽤 오랫..

고양이를 모십니다.

나는 고양이를 키운다. 내가 "고영희씨" 라고 불렀던 치즈냥이 고양이가 낳은 새끼라서 "희동이"라고 조카가 이름을 지어 줬는데, 똥꼬발랄하고 개구진 성격에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 된다. 희동이는 나의 껌딱지이다. 흔히 개냥이라고 구분하는 고양이에 해당 하는데 유난히도 나를 잘 따른다. 퇴근하고 현관문을 딱 열면 희동이와 눈이 먼저 마주친다. 막내인 희동이를 먼저 안아 주고 싶지만, 입양 고참인 두 마리의 강아지들과 먼저 인사를 하는 게 우리 집의 룰이다. 그러지 않으면 콩이, 연이는 멈추지 않는 열정적인 꼬리팰러 때문에 어쩌면 까만 코가 천장에 닿을 때까지 두둥실 날아 오를지도 모르니까.. 내가 콩이, 연이와 재회의 몸부림을 칠 동안 희동이는 멀찍이 떨어져서 세상 애처로운 소리로 야옹 거린다. 아주..

너를 키우기로 했다.

네 엄마와 난 사실 친한 사이는 아니었어. 네 엄마가 우리 카페를 드나든지 몇 달이 지날 때까지도 나는 네 엄마가 주로 어디에서 지내는지, 종일 어딜 그렇게 바쁘게 돌아 다니는지, 카페가 쉬는 날은 어디에서 식사를 하는지 아는 바가 전혀 없었어. 한동안 안 보여서 궁금해 하고 있으면 네 엄마는 우아하고 태연한 걸음으로 홀연히 나타나곤 했어. 나는 친하게 지내고 싶어 늘 악수를 청했지만, 네 엄마는 나를 무안하게 만들고 도도하게 먼저 자리를 떴어. 그래서 더 잘해주고 싶었는지도 몰라. 더 맛있는 걸 주고 싶었고 정수기에서 바로 따라 낸 깨끗한 물만 대접 했지. 바람이 점점 차가워지고 카페를 둘러 싼 밤나무들이 잎을 떨구기 시작했어. 산은 겨울이 더 빨리 찾아 오거든. 빨랫줄에 널 행주 바구니를 들고 카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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