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세탁을 마치고 나온 젖은 옷들이 빨래 건조기 안에서 천천히 말라 간다.
섬유린스의 은은한 코튼향이 집안에 가득 퍼지고, 창을 통해 들어오는 쾌적한 가을바람에 몸도 마음도 느긋해지는 휴일 오후..
말끔히 물청소를 해 놓은 베란다의 방충망 앞에 희동이가 한참을 앉아 있다.
아파트 단지 사이로 지나가는 차들도 보고, 견주와 보폭을 맞춰 산책 중인 다른 집 강아지도 내려다보고 , 건물 사이로 날아가는 까치와 산비둘기도 구경하고, 앞 동 옥상 꼭대기에서 뱅글뱅글 돌아가는 커다란 은색 환풍기도 쳐다보고 있는 것이리라.
바깥세상을 둘러보느라 여념이 없는 토실토실한 희동이 뒷모습을 보면서 지금 어떤 생각을 하며 저러고 앉아 있을까 사뭇 궁금해진다.
방마다 다니며 서랍이란 서랍은 다 들어가 보고 선반이란 선반엔 다 올라가 보고 집안 구석구석 안 가본 데가 없는 희동이의 호기심이 이제 바깥세상을 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고양이는 영역동물이라 집안에 있는 걸 좋아한다고들 말하는데 고양이에게 직접 들은 게 아닌 이상 옳은 판단이 아닐 수도 있다.
희동이는 지금 이 단단하고 네모난 콘크리트 건물에서의 탈출을 꿈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단순한 탈출을 넘어서서, 주도적이고 자유로운 하루를 꿈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푸르고 건강한 나무들 사이를 뛰어다니면서 나비를 쫒고 새들을 놀래키며 신나게 놀다가, 해가 뉘엿뉘엿 떨어지는 초저녁에 슬그머니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와 고소한 사료를 배불리 먹고 포근한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잠이 드는 흥미롭고 달콤한 상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고양이라고 해서 상상력이 없으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아~ 동물과 대화 할수 있는 번역기 같은 것 좀 누가 발명 해줬으면... 제발.
'반려동물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So happy (51) | 2024.11.10 |
---|---|
물구나무 서기 (4) | 2024.10.28 |
희동이의 낚싯대 (7) | 2024.09.07 |
고양이를 모십니다. (1) | 2024.07.08 |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 (0) | 2024.0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