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우동 한 그릇"

롤리팝귀걸이 2024. 7. 3.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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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가 유치원을 다닐 때 나는 집에서 부업을 했었다. 그때 작은 아이는 아직 아기였고 남편이 혼자 벌어 오는 돈은 많지 않아서, 소소한 일감을 찾아 반찬값이라고 하려고 시작한 일이었다.
이것저것 다양한 부업을 했었는데, 지금 얘기 하려는 그 즈음에는 핸드메이드 모직 코트를 바느질 하는 부업을 할 때였다. 손바느질을 하는 일이다 보니 단가가 높은 편이라 주문한 날짜에 늦지 않게 열심히 바느질을 했었다. 하루는 마감이 타이트 하게 잡혀서 다음 날 점심 때까지는 할당 받아 온 옷들을 모두 바느질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는데 종일 아이 둘을 돌봐야 하다보니 마감 시간 안에 끝내기가 아무래도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할수없이 남편과 아이들이 모두 잠든 밤에 거실 쪽에 작은 스탠드를 켜놓고 밤을 새서라도 일을 끝마치기로 했다.
마음이 다급해지고 한장이라도  빨리 하려다 보니 바늘에 손가락이 자꾸 찔려서 그날은 아예 휴지를 옆에 가져다 놓고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졸음을 이기려고 라디오를 켜 놓고 있었는데 새벽에 하는 방송이다보니 저음의 여자 진행자가 조용한 가요와 팝송을 틀어주는 방송이었던 걸로 기억 된다.
노래가 끝나고 그 다음으로 책을 읽어 주는 코너였는데 구리 료헤이의 우동 한 그릇이 소개 됐다.
우동 한 그릇.
출출한 새벽 시간에 들리는 우동이라는 말에 나는 라디오를 바짝 끌어 당기고 볼륨을 올렸다.
우동 한 그릇의 큰 줄거리를 요약 하자면 이렇다.

어느 해의 12월 마지막 날 밤. 북해정이라는 우동집에 초라한 행색의 세 모자가 들어온다.
두 아들의 엄마는 미안하지만 1인분만 주문 해도 되느냐고 가게주인 부부에게 묻고, 인정 많은 부부는 우동면 1인분에 반덩이를 추가해 1.5인분의 우동을 만들어 준다. 여주인이 3인분을 끓여 주자고 하지만 남편은 그렇게 하면 세 모자가 오히려 불편해 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세 모자는 맛있게 우동을 먹고 1인분의 계산을 마치고 나가고, 주인 부부는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 " 큰 소리로 그 해의 마지막 손님인 그들을 배웅 한다.
다음 해  12월 마지막 날에도 세 모자가 찾아와 우동 1인분을 시키고 주인부부는 이번에도 1.5인분의 우동을 만들어 준다.
그 다음 해에도 주인부부는 세 모자가 올 거라고 믿고 그들이 늘 앉는 2번 테이블을 비워 놓고, 늦은 시각 어김없이 세 모자가 찾아와 이번엔 우동 2인분을 주문 한다. 부부는 이번에는 3인분 분량의 우동을 끓여 내 주고 세 모자의 대화를 통해 두 아들의 아빠가 남기고 간 빚을 갚느라 그들이 고생해 온 사실을 알게 된다.
그 후로도 그 해의 마지막 날이 되면 주인 부부는 2번 테이블을 비워 두고 세 모자를 기다린다.
하지만, 어느 해부터인가 그들은 우동집을 찾아 오지 않는다.
그렇게 십수년이 지난 어느 섣달 그믐날.
드디어 장성한 두 아들과 노인이 된 엄마가 북해정을 찾아 온다. 의사와 은행원이 된 두 아들은 어려울 때 북해정에서 먹은 따뜻한 우동 한 그릇의 힘으로 용기를 내어서 살다보니 이렇게 성공 할수 있었다고 주인부부에게 감사를 전하고, 오늘은 우동 세 그릇을 주문 하겠다며 훈훈하게 이야기가 끝난다.

라디오를 통해 읽은 책이었지만, 그때의 감동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라디오를 듣는 내내 울컥 울컥 했던 것도 기억 한다.
우동 1인분만큼의 돈 밖에 갖고 있지 못한 세 모자가 쭈뼛 거리며 가게에 들어 섰을 모습을 상상하며 마음이 아팠고, 해마다 2번 테이블에 예약 팻말을 올려 두고 세 모자를 기다리는 주인부부의 따뜻함에 가슴이 뜨거워졌고, 어엿하게 성공한 두 아들이 늙은 엄마를 모시고 나타날 때는 마치 내 일처럼 기쁘고 감격스러웠다.
어쩌면 구리 료헤이의 우동 한 그릇은 내가 쓰고 싶은 글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공격과 폭력이 난무하는 미디어들의 거친 숲 속에서 나는 누군가의 축 처진 어깨를 다독여 줄수 있는 수수한 들꽃 같은 글 한송이를 피워 내고 싶다.
누군가 내가 쓴 글을 읽고 따뜻한 우동 한 그릇을 비운 듯 용기를 낼수 있다면 나는 1년 내내 가게문을 활짝 열어 놓고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맛있는 우동 한 그릇을 끓여 낼 자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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