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자 씨는 아침부터 들떠 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사나흘 전부터 오늘을 고대하고 있었다.
오늘은 79번째 맞는 민자 씨의 생일이고 세 딸과 아들네 식구들까지 모두 그녀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총출동하는 날이기도 했다.
가볍게 샤워를 할까 하다가 개운하게 때를 밀어야겠다고 생각한 민자 씨는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기 시작했다.
"어디 보자~~ 그 소금이 어디 있더라?"
첫째 딸이 얼마 전에 사다 놓은 히말라야 입욕 소금을 떠올린 민자 씨는 욕실 수납장 안쪽에서 그것을 찾아 절반쯤 차 오른 목욕물에 한 주먹을 넣고 휘휘 저었다.
옷을 벗어 차곡차곡 접어 욕실 문 앞에 있는 빈 수건 바구니에 담아 놓고 민자 씨는 천천히 욕조에 몸을 담갔다.
" 식사는 저녁 6시로 잡았는데 엄마도 괜찮지? 엄마 좋아하는 소고기 먹을 거니까 점심 과하게 드시진 말아요."
어제저녁 큰 딸의 전화를 받고 민자 씨는 이미 머릿속에 소고기를 부위별로 세팅해 놓은 상태였다.
'목욕을 마치면 일단 아침부터 먹어야겠어.
열무김치에 상추나 툭툭 잘라 넣고 고추장에 슥슥 비벼서 간단히 먹고 점심은 옥수수나 한두 개 먹고 때워야지. 속을 좀 비워 놔야 저녁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지 않겠어?'
민자 씨에게는 늘 계획이 있었다. 항상 그 계획이 백 프로 맞아떨어지는 건 아니었지만 그녀의 기준에서 오차범위를 크게 벗어난 적은 없었다. 민자 씨의 집과 제일 가까운 곳에 사는 큰 딸 내외가 제일 일찍 도착할 것이고 제일 멀리 사는 둘째네가 조금 늦을지도 모른다고 민자 씨는 생각했다. 둘째 딸이 며칠 전 통화에서 필요한 거 없냐고 물었을 때 필요한 거 하나도 없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하지 못한 게 내심 마음이 쓰였다.
둘째 딸은 일손을 놓아 본 적 없이 늘 일에 쫓기며 바쁘게 사는 처지여서 민자 씨에겐 아들 다음으로 아픈 손가락이었다.
막내로 태어난 아들이 첫 번째 아픈 손가락인 이유는 하나였다. 딸 셋을 낳고 아들은 팔자에 없나 보다 포기하고 살 즈음에 늦둥이로 태어난 귀한 아들이었다. 남편은 저녁을 먹고 나면 나이 40을 넘기고 얻은 아들아이를 목마 태우고 동네를 한 바퀴씩 돌곤 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민자 씨는 자신이 뭔가 큰 일을 해낸 거 같은 자긍심을 느끼곤 했다.
민자 씨의 남편은 아들아이가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과로사였다.
남편은 무리하게 일을 해도 될 만큼 건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워낙 잔병치레가 많은 편인 데다가 식사가 조금만 과해도 체하고 앓아눕는, 말 그대로 타고난 허약체질이었다.
그런 남편이 지인의 소개로 연탄가게를 차린 게 어쩌면 과로사의 시발점이었는지도 몰랐다.
그때만 해도 집집마다 연탄을 때던 시절이었다. 남편은 리어카에 연탄을 싣고 산동네를 오르내리며 배달을 했다. 물론 민자 씨가 함께 다니며 힘을 보태긴 했지만, 체력이 약한 남편에게 연탄배달은 누가 봐도 버거운 일이었다.
민자 씨는 때가 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종아리를 엄지손가락으로 문질 거렸다.
아직 때가 밀릴 기미가 없자 욕조 안으로 깊숙이 몸을 누이며 다시 옛 기억을 더듬어 갔다.
(2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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