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38

엄마 우리 여행 갈래?

나는 TV를 거의 보지 않는다. 정말 보고 싶은 게 있다면 TV로 정주행 할 수도 있지만, 거의 유투브에 요약 되어 올라 오는 걸 보는 편이다. 요즘은 "엄마 단둘이 여행 갈래" 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유투브로 보고 있다. 이효리가 좋아서 보게 됐는데 볼수록 많이 공감하게 된다. 나 역시 엄마와 그리 애틋한 사이가 아니다 보니 그런 관점에서 보고 느끼는 게 많다. 티끌 없이 자랐을 것 같은 이효리도 평탄치만은 않은 가정사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 조금 놀라웠다. 엄마와의 첫 여행을 즐거워 하면서도 불쑥 불쑥 표현되는 부모에 대한 원망의 감정들이 그녀의 솔직함을 그대로 보여 준다. 그 모습들은 나를 돌아 보게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엄마에 대한 약간의(?) 미움과 크고 작은 원망들.. 원래 부모 자식간은 필연..

일상 이야기 2024.07.05

나의 소울 푸드

나는 소울 푸드라는 말을 가끔 사용하는 편이다. 내가 말하는 소울 푸드의 의미는 내가 기분이 우울 하거나 혹은 기운이 없을 때 그것을 먹음으로써 에너지를 얻게 되는 그런 음식을 말하는데, 사전적 의미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고유 식문화, 전통적으로 미국 남부 흑인들과 관련된 음식을 말한다고 한다. 나의 소울 푸드는 떡국이다. 어릴 때 설날을 손꼽아 기다렸던 가장 큰 이유가 떡국 때문이었을 정도로 나에게 떡국은 특별한 음식이었다. 결혼을 하고 처음 맞는 설날이 됐을 때 시댁은 떡국을 안 끓이고 오로지 김치만두만 넣어 먹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물론 시어머니가 손수 빚으신 만두는 맛이 좋았지만, 시댁에서의 첫 떡국을 기대 했기에 약간의 실망감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 된다. 다행히 지금은 시댁에서도 만두 위주의..

일상 이야기 2024.07.02

저의 그림 전시회에 당신을 초대 합니다.

작년 5월쯤인가 갑자기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더랬다.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들을 보다가 문득 그것들을 그려보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 일어났다. 나는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 했을 때 미루는 성격이 못된다. 바로 일어나 다이소로 뛰어 가서 스케치북과 아크릴 물감, 수채화 물감, 여러 사이즈의 붓들, 4B연필, 지우개, 색연필, 연필깎이, 다양한 사이즈의 캔버스를 한 보따리 사들고 왔다. 나는 다소 충동적인 성격인 반면 계획적이지는 못하다. 무얼 어디에 그리고 색칠은 무엇으로 할지 피사체의 크기는 어느 정도가 좋을지 그런 계산은 1도 하지 못한다. 일단 연필을 들고 망설임 없이 선을 긋고 바로 색을 칠한다. 제일 처음 그린 건 사과였다. 마침 집에 있던 딸아이와 식탁에 마주 보고 앉아서 각자 사과를 그리기 시작했다..

일상 이야기 2024.07.01

여름감기

나는 오후 1시가 되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 온다. 오늘의 도시락은 전주비빔밥과 천도 복숭아 두 알. 여름감기를 거하게 앓는 중이라 도시락에까지 신경이 써지질 않아서 쿠팡에서 파는 냉동 비빔밥을 전자렌지에 데워 왔다. 콧물이 줄줄, 잔 기침이 있고 입맛도 없지만 차 뒷 자리에 지친 몸을 누이고 꾸역꾸역 밥을 씹어 넘긴다.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감기에 걸리고 보니 만사가 무기력하다. 검은 색 모하비 한대가 내 차 옆으로 부드럽게 주차를 한다. 운전석에서 남자가 내려 트렁크를 열고 유모차를 꺼낸다. 조수석에서는 아내로 보이는 여자가 하얗고 귀여운 포메라니안을 안고 내린다. 강아지가 너무 이뻐서 나는 밥 숟가락을 내려 놓고 그들을 본다. 부부가 포메를 다루는 손길이 너무나 섬세하다. 남자는 ..

일상 이야기 2024.06.28

소풍

비가 내리는 주말, 야외주차장에 서 있는 내 애마는 깨끗하게 세수 하고 나온 아이처럼 반짝 거린다. 차 문을 열고 문짝에 우산을 받쳐 놓고 도시락 가방을 연다. 볶음밥에 달걀 후라이와 양반김 하나, 가지런히 썰어 담은 파프리카 한 통. 직원들도 평일에는 아울렛 지하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지만, 주말과 공휴일은 야외주차장에 주차를 해야 한다. 점심으로 주로 도시락을 싸 오는 나는 뒷 좌석에 거의 눞다시피 앉아 세상 편한 자세로 도시락을 먹는다. 일을 다니면서 소소하게 느끼는 행복 중에 소풍 나온 거 같은 이 시간이 포함 된다. 차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잦아 든다. 내가 도시락을 먹는 동안 만이라도 폭우처럼 쏟아져도 좋을 것을.. 다시 매장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배도 부르고, 비도 내리고, 새로 처..

일상 이야기 2024.06.22

진짜 여름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아들 아이가 차를 빌려가서 이틀째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한다. 버스를 안 타본지 이삼년은 된 거 같다. 일단 핸드폰 뒷면에 꽂혀 있는 카드가 후불 교통카드인지 확인을 하고 챙 모자를 챙겨들고 집을 나선다.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동안 6월 중순의 더위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뜨거운 햇살이 내리 꽂힌다. 버스가 도착하려면 6분이나 남았다. 버스를 기다리며 정류장 옆에 있는 상점들을 천천히 둘러 본다. 호두과자 집, 핸드폰 가게, 복권판매점, 커피숍, 과일가게. 과일 가게 좌판에 나와 있는 저 과일들은 과연 안녕한걸까? 덜 자란듯 알이 작은 대석자두와 천도 복숭아가 달궈진 에어프라이어에 들어가 있는 고통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닌지 사뭇 궁금 하다. 버스를 탄다. 내리기 편하게 뒷문 바로 앞 자리에 앉으려다가 멈칫 ..

일상 이야기 2024.06.20

그 곳은 어떠니?

나에겐 40년지기 베프가 있었다. 이름은 김정숙. 정숙이는 2021년 5월에 갑작스런 뇌출혈로 쓰러졌다. 평소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자기 관리에 열심인 친구였기에 갑자기 뇌출혈로 뇌사 상태가 됐다는 사실을 믿기가 어려웠다. 여러 병원을 거치다가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했다. 뇌사 상태로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정숙이는 긴 머리카락을 풀어 헤친 예쁜 바비 인형처럼 보였다. 평소 보기 좋게 태닝을 한 거처럼 가무잡잡 했던 피부는 형광등 불빛 때문인지 몹시 창백 했고 손과 발은 얼음장처럼 찼다. 나는 한참을 서서 울다가 시간이 다 됐다는 간호사의 말에 고개를 숙여 정숙이의 차디 찬 뺨에 얼굴을 대고 조용히 말했다. "정숙아. 편히 가. 다음 생애에도 우리 꼭 친구 하자." 정숙이가 쓰러진 지 일주일 만에 장례를 치르..

일상 이야기 2024.06.16

2015년 늦가을의 일기

밤공기가 차다. 봄비는 내릴 때마다 기온이 상승 하지만 가을비는 내릴 때마다 겨울로 다가간다. 올해도 어느새 또 이만큼 온건가.. 매년 느끼면서도 매번 놀란다. 이래서 사람은 지난 일을 쉽게 잊고 실수를 되풀이 하고, 했던 말을 잊고 또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다시 하면서도 이게 단순한 데자뷰인지 내 망각이 만든 반복인지 분간이 어려운가 보다. 문득 내 삶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내가 잘 살고 있는건지...이렇게 살아가는 게 맞는 건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생각을 해 볼 뿐 결론도 답도 없을 걸 알지만 그저 잠시 생각 해보는 거다. 그 생각의 끄트머리에서 어딘가로 멀리 떠나는 상상을 해 본다. 떠나게 된다면 손에 든 가방은 단촐하고 의상은 만추에 나오는 탕웨이처럼 수수하고, 흙바람에 날리는 건조한..

일상 이야기 2024.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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