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38

최애 유튜브 채널

즐겨보는 유튜브 중 최애를 꼽으라면 Country Life Vlog라는 채널을 말하고 싶다.아제르바이잔에 사는 어느 집을 배경으로 아내는 음식을 만들고 남편은 농사를 지으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담는 채널이다. 아제르바이잔 샤흐다 그 마운틴현재 구독자가 715만 명 정도인데 그들의 영상을 볼 때마다 구독자가 왜 그렇게 빨리 늘어가는지 충분히 이해가 된다.내가 그 채널을 처음 접했을 때만 해도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가 걸어 나올 것만 같은 초록색 문이 있는 작은 집 앞에서 흔들리는 낡은 책상 같은 걸 갖다 놓고 요리를 하곤 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큰 집을 짓고 창고를 짓고 다리를 놓고 화원을 지으며 점점 볼거리가 많아졌다.내가 이 채널을 애정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영상에 나오는 ..

일상 이야기 2025.01.12

서울 가는 날

한파주의보가 내려진 차가운 날. 친구들과의 약속이 있어 서울을 간다.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20여년간 수도권에 살다보니 서울은 이제 너무 복잡하고 먼 곳으로 느껴진다.집에서 나가기 전 기온을 검색해 본다. 체감온도가 -15도?내 휴무에 맞춰 잡은 약속이라 하필 한파의 날씨인 것이 친구들에게 미안하다.반포에서 만나 점심을 먹고 쇼핑도 할 계획이다.주차가 어렵겠지 싶어 차를 놓고 버스를 타기로 한다.핸드폰 검색창에 출발지와 목적지를 입력하면 가는 대중교통과 도착시각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버스를 거의 안 타서인지, 검색할 때마다 감탄이 나온다. 이런 교통시스템이 된지 오래 됐다는걸 물론 알지만, 자주 접하지 않는 사람에겐 아직도 신박하다.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며 정류장에 마냥 서 있던 수고로움은 ..

일상 이야기 2025.01.09

This too shall pass away(이 또한 지나가리라)

휴무날 아침, 늦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아파트 뒤 공원이 온통 흰 눈으로 덮여있다.부지런한 아빠들이 아이를 태운 눈썰매를 끌거나 함께 눈을 굴리고 있는 평화로운 풍경을 내려다보다가 눈이 녹기 전에 나도 딸아이와 함께 콩이, 연이를 데리고 나가기로 한다.두 겹 씩 옷을 껴입고 어그부츠에 장갑까지 장착하고 집을 나선다. 산책길 곳곳에서 겨울을 즐기는 사람들을 본다.그놈의 용산 이무기 때문에 고구마 삼백오십 개쯤 먹고 체한 거 같은 답답함이 해소되지 않고 있지만, 삼삼오오 모여 해맑게 눈사람을 만드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세상엔 긍정적이고 지혜로운 사람들이 더 많을 거라는 따뜻한 믿음 같은 게 자라나는 느낌이다.콩이. 연이의 발이 꽁꽁 얼어 버리기 전에 산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다. 따뜻한 물로 목욕을 시키..

일상 이야기 2025.01.05

내리실 문은 없습니다!

'오늘이 며칠이지?'핸드폰을 켜고 날짜를 확인한다.12월 19일.한 달 정도를 날짜 가는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지냈다.국가적으로 무지몽매한 큰 사건이 있었고, 개인적으로도 부분적인 집 리모델링을 하느라 이래저래 부산스러운 시간들이었다.그러는 사이에 벌써 12월의 중반에 와 있다.요 며칠은 잃어버릴뻔한 자유를 되찾은 기쁨을 느끼면서 포인세티아를 화병에 꽂고, 창고에서 반짝이는 전구를 꺼내 장식하고, 크리스마스 재즈도 들으면서 남은 2024를 즐기고 있다. 2024도 아직 낯선데 곧 2025가 온다.오십견으로 잘 올라가지도 않는 팔을 최대한 넓게 벌리고 2025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할 때다. 너무 센스 있는 문구 아닌가요? (뉴스에서 캡처)

일상 이야기 2024.12.19

오늘도 해피엔딩

겨울비가 내리는 주말 저녁.아들아이가 차를 빌려간 바람에 집까지 20여분 정도를 걸어서 퇴근하는 길.비가 내리는 기온이라 아주 춥지는 않지만 그래도 11월 말일이니만큼 목덜미가 서늘해서 모자를 푹 뒤집어쓰고 젖은 낙엽을 밟으며 타박타박 걷는다.주머니에서 울리는 핸드폰의 진동.딸아이 전화다.친구가 놀러 와서 그러니 자기 집에 들러 강아지들을 좀 데려가 달라는 부탁 전화.딸아이집은 우리 집에서 1km쯤 떨어져 있으니 직장에서 집까지 걸어간 거리만큼을 또 걸어가야 하는데, 종일 일하고 퇴근하는 엄마 생각은 안 하는구나 싶은 게 한숨이 저절로 쉬어진다.그럴만한 사정이 있을 테니 일단 서운함은 접어두고, 딸아이 집을 향해 씩씩하게 또 걷는다.오랜만에 보는 딸아이 친구와 잠시 인사를 나누고 강아지들을 데리고 아파트..

일상 이야기 2024.12.01

트롤브루 자몽 맥주

퇴근 후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캔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준다. 집 앞 편의점에 들러 네 캔에 만 원짜리 맥주를 고르다가 트롤브루라는 낯선 맥주를 발견했다. 처음 보는 맥주나 와인을 고를 때 나는 그 상품의 디자인이나 그림을 보고 선택할 때가 종종 있는데 트롤브루 캔의 그림이 딱 그랬다. 트롤브루 자몽의 그림에는 파란 옷을 입은 트롤(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생물)들이 홉 열매가 주렁주렁 걸린 광산 안에서 곡괭이로 자몽을 캐내고 있는데, 루비자몽을 보석에 빗대어 착안한 신비스러운 그림인 듯하다. 맛은 탄산이 조금 섞인 자몽 주스라고 표현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알코올이 2.6% 라 그런지 술이라는 느낌은 거의 없고 개인적으로 은은한 자몽향과 약간 씁쓸하면서도 깔끔한 뒷맛이 좋다. 나는 딸아이가 만들어 ..

일상 이야기 2024.11.11

혜화역 1번 출구

결혼 전 직장동료로 만나 30여 년간 긴 우정을 이어오고 있는 두 친구가 있다. 점심약속을 하고 어디서 볼까 의논 끝에 오랜만에 혜화동에서 만나기로 했다. 낙엽 지는 마로니에 공원도 걷고 맛있는 점심도 먹기로 했다. 혜화역 1번 출구 앞. 젊은이들로 북적이는 그야말로 젊음의 거리 대학로.. 친구 하나가 조금 늦을 거 같단다. 먼저 만난 친구와 역 부근을 둘러보다가 액세서리를 파는 팬시점에 들어갔다. 가방에 달고 다닐 작은 천 원짜리 참장식을 하나 골랐더니 친구가 선물이라며 천 원을 대신 내준다. 아싸~ 득템^^ 친구가 사준 맘에 쏙 드는 선물. 친구 하나가 마저 도착했고 우리는 고민 끝에 점심메뉴를 닭갈비로 정했다. 모짜렐라 치즈와 우동사리가 듬뿍 들어간 철판 닭갈비로 든든히 배를 채우고 우리들은 붐비는..

일상 이야기 2024.11.03

직장을 옮겼다.

얼마 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집에 있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직장 내에서의 믿음과 유대감이 깨지면 그곳에서 계속 일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다. 숲을 벗어나야 비로소 산 전체를 볼 수 있듯이 다니던 직장을 떠나고 보니 리더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미성숙한 한 사람이 일으키는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것이었는지 실감된다. 며칠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푹 쉬었다. 며칠 쉰다고 아픈 몸이 회복되거나 바닥난 에너지가 만땅 충전되는 건 아니지만, 쇼파에 비스듬히 누워 강아지들을 쓰다듬거나 사랑스런 고양이와 잠깐씩 낮잠을 자는 것만으로도 디톡스가 되는 시간들이었다. 이틀 전, 새로운 직장으로 첫 출근을 했다. 내가 하게 될 일보다는 그곳의 사람들을 먼저 봤다. 내 경험으..

일상 이야기 2024.10.31

무제

샤워를 하고 나와 큰 전신거울 앞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린다. 다들 이런 건지 내가 유난히 이런 건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젖어 있는 무언가가 목에 닿는 걸 잘 못 견딘다. 꽤 어렸을 때의 기억 중 하나.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 세수를 할 때 아빠가 옆에서 목도 깨끗이 닦아야 한다고 자상하게 알려줄 때에 나는 차마 거부할 수 없어 작은 손에 물을 묻혀가며 목을 닦곤 했는데, 수건으로 목의 물기를 닦아낸 뒤에도 남아있는 젖은 옷의 축축한 느낌이 너무 싫었었다. 그때부터였을까. 젖은 머리가 반쯤은 말라야 그제서야 느끼는 안도감. 머리를 말리며 점점 횅~해지는 정수리 가르마를 거울 가까이서 바짝 들여다보다가 흰머리가 꽤 자랐다는 것을 인식한다. '우쒸.. 염색한 지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일상 이야기 2024.10.26

가을예찬

가을비가 내리는 평온한 화요일. 딸아이가 만들어 준 딤섬으로 맛있는 점심을 먹고 구수한 작두콩 차를 마신다. 투명한 유리잔에 담긴 짙은 갈색 차는 가을과 많이 닮아있다. 로즈메리오일을 서너 방울 떨어뜨린 오일버너에 초를 켜고 멀찍이 앉아 노랗게 반짝이는 촛불을 본다. 따뜻한 차를 마시며 창밖의 잔뜩 흐린 회색 하늘과, 베란다 난간에 매달린 작은 빗방울들과,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거실을 돌아다니는 강아지들의 씰룩이는 엉덩이를 바라보는 지금. 완벽한 행복을 느끼는 시간이다. 가을에만 느낄 수 있는 이 고즈넉하고 아늑한 정서가 참 좋다. 이 가을이 오래 좀 머물러줬으면...

일상 이야기 2024.10.22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