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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퇴근시간이 늦다보니 강아지들 산책 시키기가 쉽지 않다. 가방만 내려 놓고 바로 콩이,연이를 데리고 나갔다 오리라 결심 했다가도 집에 들어서면 얼른 씻고 쉬어야겠다는 생각 뿐..
오늘같은 휴일에 산책을 충분히 시켜야 하는데 오전부터 종일 비가 오락가락이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어제 다이소에서 사 온 미술도구를 꺼낸다.
여태는 색연필과 아크릴 물감으로만 그림을 그렸는데 어제는 문득 파스텔 크레파스를 사고 싶었다.
어릴 때 미술시간에 써본 이후로 몇 십년만에 다시 만져보는 크레파스다.
내가 산 건 오일파스텔이라고 쓰여 있는데 검색해보니 고급 크레파스라고 하며 이름처럼 찰지고 오일리한 느낌이 강하다.
찐득한 크레파스 가루가 식탁 위에 묻고, 마시고 있는 커피잔 손잡이에 들러 붙고 난장판이지만 오히려 재밌게 느껴진다.
그림을 그릴 때의 행복감은 상당하다.
물론 어디다가 내 보이기도 부끄러운 그림이란 걸 스스로 잘 알지만, 나는 내 그림에 대체로 만족한다.
완성된 그림을 콩이와 연이에게 먼저 보여 준 뒤에 3m 테이프를 이용해 주방 한쪽 기둥에 찰싹 붙인다. 그 앞에 곧게 등을 펴고 서서 몇 초간 그림을 감상한다. 나는 이 잠깐의 뿌듯한 성취감을 맛보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지도 모른다.
베란다 창 밖을 내다본다. 그새 비는 멎었고 회색 구름도 어느 정도 걷혔다.
"우리 산책 가자~"
눈치가 빠른 콩이, 연이는 이미 겅중 거리며 거실을 뛰어 다니기 시작하고, 나는 모자를 꺼내 쓰고 붙박이장을 열어 리드줄을 꺼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