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철의 절정이다.
내가 일하고 있는 아울렛은 피서를 떠나기 전 위시 리스트를 충족 시키려는 사람들로 연일 북적인다.
전월 대비 매출이 크게 상승하고 일의 강도도 그에 비례 하고 있다. 주어진 급여의 월급쟁이들은 이런 매출상승이 그닥 달갑지만은 않은 게 사실이지만, 한가로운 날들도 있었으니 비지땀 흘려가며 일에 몰두 해야 할 시간 또한 불가피하다.
나도 예전에는 휴가철인 이 때를 손꼽아 기다리고, 빠뜨린 것이 없는지 메모지를 체크 해가며 여행 가방을 싸고, 차가 밀릴 시간을 피한답시고 이른 아침부터 자고 있는 아이들을 깨워 푸른 바다가 있는 피서지로 떠나곤 했다. 맨발로 디딜수도 없는 뜨거운 모래사장에 텐트를 치고 보글보글 캠핑찌게를 끓이고 코펠에 지은 설익은 밥을 먹으면서도 즐거웠던 시절이었다.
물에서 나온 아이들 몸에 선크림을 덧발라주고 지칠줄 모르는 물놀이로 배가 출출 해지면 지글 거리는 땡볕 아래서 뜨거운 라면을 후후 불어 먹고, 휴지도 없는 공용화장실 앞에 줄을 서서 다리를 배배 꼬며 순서를 기다리면서도 그마저도 재미있던 때였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언젠가 어느 버스 후면에 이 문구가 붙어 있는 걸 본 적이 있는데 목욕탕 광고였다.)
지금은 예전같은 그런 휴가가 전혀 내키지 않는 걸 보면 말이다.
살아오면서 수 많은 "때"를 거쳐 왔다.
다행히 그 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들을 대체적으로 놓치지 않으며 해 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무엇을 할 때일까..
주위에 손주를 보는 친구들이 꽤 생겨나는 걸 보면 슬슬 할머니의 역할을 준비 해야 할 때 일것도 같고,
경제적인 풍요를 누리며 취미생활을 즐기는 또래들을 보면 '나도 골프라는 것을 한번 해 봐? ' 라는 주제파악 안되는 생각도 잠시 했다가, 결국엔 여지껏 그래온거처럼 형편에 맞게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정답일거라는 뻔한 처방전을 내리게 된다.
분명한건~
지금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정확히 볼 줄 알아야 하는 때.
주위 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사람으로 평가 되고 있는지 냉정하게 피드백 해 봐야 할 때.
나이 먹으며 생겨난 나의 아집이나 오만이 선을 넘고 있는 건 아닌지 심각하게 짚어 봐야 할 때.
내가 겸손하게 잘 살고 있는건지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 봐야 할 때.
현재 내가 그리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더 늦기전에 좋은 사람이 되려고 최대한 노력 해 봐야 할 때.
강릉 경포대 해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