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안녕, 오벳?

롤리팝귀걸이 2024. 8. 10.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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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쯤 구제 의류를 분류하고 포장하는 일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일을 하게 된 이유는 전에 해보지 않은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어서였는데, 일본에서 수입해 온 구제의류(중고의류)를 종류별, 등급별로 나누어 다림질을 하고 가격표를 붙여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다시 판매하는 일을 하는 곳이었다. 헌옷들을 만지는 일이다보니 기본적으로 깨끗한  환경이 아니었고 커다란 컨테이너 박스가 작업장이라서 거의 바깥의 기온과 차이가 없을 만큼  열악한 환경에서 일을 해야했다. 사업장은 꽤 커서 사장을 제외한 직원이 10명 정도 됐는데, 외국인 두 명이 포함 되어 있었다. 힘을 써야 하는 일들을 거의 도맡아 하던  오벳이라는 청년은 서아프리카의 가나에서 온 30대 중반의 성실하고 조용한 친구였는데, 한국말이 서툴렀지만 나와는 그런대로 대화가 통해서 쉬는 시간이면 나의 보잘것 없는 영어와 바디랭귀지를 이용해 잠깐씩 짧은 대화를 하곤 했다. 
어느 날이었다. 
점심을 먹고 일하는 곳으로 들어 가는데 사장과 직원  두어명이 오벳 주위에 모여 있었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 오벳이 핸드폰을 잃어 버렸다고 했다. 일하면서 작업장 어딘가에 핸드폰을 떨어뜨린 모양이었다. 평소에도 냉랭하고 4가지가 없던 젊은 사장은 오벳을 나무라며 자리를 떴고 직원들도 이내 무심하게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오후 작업이 시작 되었고 오벳은 일하는 내내 침울해 보였다. 그렇게 퇴근 시간이 됐고 모두들 장갑을 벗고 먼지를 털어내며 작업장을 빠져 나가면서도 한 시간 정도 더 남아서 혼자 마무리를 해야 하는 오벳에게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우울해 보이는 오벳을 보며 맘이 편치 않았던 나는 서툰  영어로 "내가 핸드폰 찾는 걸 도와줄까?" 라고 물었고  오벳은 활짝 웃으며 ok~ thank you ~를 연발했다.  
작업장에 틀어 놓았던 라디오를 끄고 나는 오벳의 핸드폰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진동으로 해놨다는 핸드폰을 찾기 위해 우리 둘은 귀를 쫑긋 세우고 넓은  컨테이너 안을 돌아 다니기 시작했다.  
오벳의 행동반경이 넓었기 때문에 시간이 꽤 걸릴거라고 예상을 했었는데 다행히도 그리 오래지않아 분류가 끝난 박스 안에서 아주 작게 위잉~~거리는 진동소리가 들렸다.
오벳이 수북히 쌓인 옷들을 들어 내고 박스를 헤집고 들어가 겨우겨우 그의 핸드폰을 끄집어 냈을 때 나는  기뻐서 환호성을  질렀다.  
그 일이 있고 두어달 뒤 내가 사정이 생겨 그 곳을 그만 두게 됐을 때  오벳은  "I'm going to miss you. " 라고 상냥하게 말하면서 가나에서 가져 온 정말 맛있는 오리지날 초코렛이라며 귀한 가나초코렛을 내게 선물로 주었다.
요즘도 가끔 그 작업장 근처를 지날 때면 오벳이 생각나곤 한다.
점심시간에 혼자 나가서 햇살이 떨어지는 화단 한쪽에  앉아 빨간 사과를 크게 베어 먹던 모습이  떠오른다. 돈 많이 벌어서 아내가 있는 고향에 가고 싶다던 순박한 가나 청년 오벳은 꿋꿋이 잘 있을까?  
부디 인정이 말라버린 사람들로부터 마음 다치지 말고 건강하게 잘 지내기를 맘 속 깊이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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