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이야기

너를 키우기로 했다.

롤리팝귀걸이 2024. 6. 14.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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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엄마와 난 사실 친한 사이는 아니었어.
네 엄마가 우리 카페를 드나든지 몇 달이 지날 때까지도 나는 네 엄마가 주로 어디에서 지내는지, 종일 어딜 그렇게 바쁘게 돌아 다니는지, 카페가 쉬는 날은 어디에서 식사를 하는지 아는 바가 전혀 없었어.
한동안 안 보여서 궁금해 하고 있으면 네 엄마는 우아하고 태연한 걸음으로 홀연히 나타나곤 했어.
나는 친하게 지내고 싶어 늘 악수를 청했지만, 네 엄마는 나를 무안하게 만들고 도도하게 먼저 자리를 떴어. 그래서 더 잘해주고 싶었는지도 몰라.
더 맛있는 걸 주고 싶었고 정수기에서 바로 따라 낸 깨끗한 물만 대접 했지.
바람이 점점 차가워지고 카페를 둘러 싼 밤나무들이  잎을 떨구기 시작했어. 산은 겨울이 더 빨리 찾아 오거든. 빨랫줄에 널 행주 바구니를 들고 카페 뒷 마당으로 걸어 가다가 나는 꺅~ 비명을 질렀어.
네 엄마 옆에 엄마를 꼭 빼닮은 네가 웅크리고 있었거든!
한동안 안 보인다 했는데 그 사이 2세를 낳은 건가..
행주 바구니를 던져 놓고 가족들에게 이 소식을 알리러 뛰어 갔어.
모두들 각자의 핸드폰을 들고 나와 슬레이트 지붕 밑에 숨어 있는 너를 카메라에 담았어.
모두들 들떴고 너의 출현을 환영했어.
너의 존재를 알게 된 뒤부터 우리는 너나 할것 없이 너를 보기 위해 수시로 뒷 마당을 기웃 거렸어.
네 엄마는 뒷 마당 보일러실에 정착을 하는 듯 보였어. 드뎌 그녀의 방랑벽이 종지부를 찍는 거 같아 안심이 됐지만, 한편으로는 절대 안심 할수 없는 나날의 연속이었어.
어린 너는 못이 튀어 나온 나무 판자 사이를 뛰어 다니고 녹이 잔뜩 슬어 있는 호미를 밟고 다니면서 보란 듯이 우리들의 애간장을 태웠어.너에게 쾌적하고 안전한 놀이터를 만들어 주고 싶어진 나는 커피를 내리는 중간 중간마다 보일러실 주변의 위험한 물건들을 정리 했지만, 너희 모녀는 내 손길이 닿은 곳을 피해 더 위험한 곳을 찾아 다니는 듯 했어.
너의 앙증 맞은 발을 만져 보는 게 모두의 간절한 소망일 정도로 너는 너무나 사랑스럽고 소중했어.
그렇게 우리는,  너를 사랑하게 됐어.

크리스마스를 한달 쯤 앞두고 우리 가족은 카페를 떠나야 할 처지가 됐어. 아쉬움이 컸지만, 어쩔수 없는 결정이었지.우리가 떠나는 건 그렇다 치고 문제는 너였어. 나는 네 엄마를 영희씨(풀네임은 고영희)라고 불렀고 네 이름은 영희의 아이란 뜻으로 희동이로 불리고 있었는데,  모두들 너희 모녀가 다가오는 겨울을 무사히 보낼 수 있을지 걱정했어.
영희씨는 호락호락한 스타일이 아니라서 내가 마련해 준 포근한 집 따위엔 한 발짝도 들여 놓지 않았어. 게다가 보일러실 안에 은신처를 마련했던 영희씨는 어느 날부턴가 너를 놔두고 종적을 감춰 버렸지.
너는 차가운 장독대 항아리 위에 앉아 종일 엄마를 기다리는 듯 했어. 우리가 카페를 떠나기 전까지 너의 끼니 정도는 챙겨 줄 수 있었지만, 엄마를 부르며 울부짖는 너를 위해 더 이상은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어. 우리는 울고 있는 너를 보며 같이 슬퍼 했어.

우리는 가족회의를 했어.
엄마가 돌보지 않는 어린 너를 추운 산 속에 버려 두고 갈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어.
당장 밥을 굶을 걸 알면서 너를 그 곳에 두고 간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따끔 거렸어.
우리는...너를 키우기로 했어.

우리 가족은 카페를 접고 나서 각자 살 궁리를 시작 해야 했지만, 너를 데리고 온 결정에는 일말의 후회도 없었어.
그러나, 이미 두 마리의 강아지가 온 집안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네가 쉽게 적응 하기는 어려운 게 당연했어.
첫 한달 가량을 너는 침대 밑에서 나오지 않았어.
다행히 우리가 없는 사이에 밥그릇을 다 비웠고 화장실도 꼬박꼬박 가는 거 같았어.
너는 그렇게 서서히 우리의 가족이 되어 갔어.

희동아~ 나는 가끔 너의 아깽이 시절 영상을 보곤 해.
카페 뒷 마당에서 고영희씨와 함께 장난 치고 있는 너를 보면 늘 마음이 짠해져.
너는 엄마를 기억할까?
너의 엄마가 어느 날 다시 돌아와, 사라져 버린 너를 찾으러 온 산을 헤맨 건 아닐까?
사람 마음 편하자고 너를 데려 온 게 과연 너에게도 좋은 일이었을까?
이 글을 쓰는 내 옆에서 긴장 하나 없이 편안하게 잠든 너에게 묻고 싶어.
너도.. 행복한거지?







  카페 뒷 마당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희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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