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이야기 8

So happy

따뜻한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평화로운 휴일. 보글보글 끓인 된장찌개에 특별한 반찬 없이 밥 한 공기를 뚝딱 먹으면서 오늘은 식구들 이불을 좀 더 두꺼운 걸로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먼저 안방 침대 위 이불과 토퍼를 걷어내고 새 이불로 교체하는데, 콩이와 연이가 앞다투어 뛰어 들어와 새 이불 위에서 뒹굴거리기 시작한다. 늘상 있는 일이라 그러려니 하면서도 어쩜 저리 아이들과 하는 짓이 비슷할까 신기하게 느껴진다. 깨끗하게 빨래가 된 보송 거리는 이불을 좋아하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동물들이 코를 비비며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며 좋아하는 모습은 볼 때마다 재밌다. 좀처럼 비켜주지 않는 콩이, 연이를 겨우 내려 보내고 안방 침구정리를 마저 끝냈다. 자고 있는 아들아이 방은 나중에 정리하기로 하고, ..

물구나무 서기

침대 위에 앉아 고양이 낚싯대로 희동이를 부른다. 낚싯대를 요란하게 흔들어 댈수록 희동이는 더 신이 나는 모양이다. 침대 아래 깔아 놓은 카펫 위를 우다다다 뛰어다니며 낚싯대 끝에 매달린 초록색 리본을 사냥하다가, 작고 하얀 발가락 사이에 리본이 걸려들면 보란 듯이 씩씩 거리며 침대 위로 물고 올라온다. 내가 앉은 발치에 그것을 당당히 내려놓고 나를 한번 보고 이빨자국 가득한 리본을 한번 보고 어서 낚싯대를 다시 던져보라고 무언의 재촉을 한다. 점점 두둑해지는 희동이의 폭신한 뱃살이 가쁘게 숨을 몰아 쉬다가, 충분히 놀았는지 아무렇게나 리본을 뱉어 놓고 언제 뛰어다녔냐는 듯 세상 편한 자세로 잠이 든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희동이의 감겨있는 갈색 속눈썹을 조용히 들여다보다가 문득 물구나무서기를 해보고..

너도 자유를 꿈꾸는 거니?

막 세탁을 마치고 나온 젖은 옷들이 빨래 건조기 안에서 천천히 말라 간다. 섬유린스의 은은한 코튼향이 집안에 가득 퍼지고, 창을 통해 들어오는 쾌적한 가을바람에 몸도 마음도 느긋해지는 휴일 오후.. 말끔히 물청소를 해 놓은 베란다의 방충망 앞에 희동이가 한참을 앉아 있다. 아파트 단지 사이로 지나가는 차들도 보고, 견주와 보폭을 맞춰 산책 중인 다른 집 강아지도 내려다보고 , 건물 사이로 날아가는 까치와 산비둘기도 구경하고, 앞 동 옥상 꼭대기에서 뱅글뱅글 돌아가는 커다란 은색 환풍기도 쳐다보고 있는 것이리라. 바깥세상을 둘러보느라 여념이 없는 토실토실한 희동이 뒷모습을 보면서 지금 어떤 생각을 하며 저러고 앉아 있을까 사뭇 궁금해진다. 방마다 다니며 서랍이란 서랍은 다 들어가 보고 선반이란 선반엔 다 ..

희동이의 낚싯대

희동이를 만난 지 1년이 되어간다. 남편이 운영하던 카페의 뒷동산에서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주먹만 한 희동이를 처음 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엄마 고양이가 함께 있었는데 초겨울이 되고 우리 가족이 카페를 그만둘 때가 되자 엄마 고양이가 홀연히 사라졌다. 엄마와 함께 있는 희동이 ㅠㅠ 남겨진 희동이를 집으로 데려오기로 결정했지만, 사람 손을 타본 적이 없는 야생 새끼 고양이를 과연 어떻게 잡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일단 츄르를 좀 사고 긴 막대 끝에 깃털이 달린 고양이 낚시 장난감을 사서 희동이를 유인하기로 했다. 딸아이가 인내심을 갖고 며칠간 츄르를 사료그릇에 짜주고 장난감으로 놀아주던 어느 날 드디어 희동이를 잡는데 성공은 했지만, 느닷없이 케이지에 실려 낯선 공간에 오게 된 희동이는 꽤 오랫..

고양이를 모십니다.

나는 고양이를 키운다. 내가 "고영희씨" 라고 불렀던 치즈냥이 고양이가 낳은 새끼라서 "희동이"라고 조카가 이름을 지어 줬는데, 똥꼬발랄하고 개구진 성격에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 된다. 희동이는 나의 껌딱지이다. 흔히 개냥이라고 구분하는 고양이에 해당 하는데 유난히도 나를 잘 따른다. 퇴근하고 현관문을 딱 열면 희동이와 눈이 먼저 마주친다. 막내인 희동이를 먼저 안아 주고 싶지만, 입양 고참인 두 마리의 강아지들과 먼저 인사를 하는 게 우리 집의 룰이다. 그러지 않으면 콩이, 연이는 멈추지 않는 열정적인 꼬리팰러 때문에 어쩌면 까만 코가 천장에 닿을 때까지 두둥실 날아 오를지도 모르니까.. 내가 콩이, 연이와 재회의 몸부림을 칠 동안 희동이는 멀찍이 떨어져서 세상 애처로운 소리로 야옹 거린다. 아주..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

콩이는 2021년 1월에 딸아이가 입양 했다. 콩이 입양 전에 키우던 두 마리의 개가 모두 나이 들어 차례로 죽고, 나는 말로만 듣던 펫로스 증후군에 한동안 잠식 되어 있었다. 적어도 1년 반 이상을 사진만 봐도 울고 꿈에만 나와도 울고 그 개들이 묻힌 곳을 지나만 가도 울었다. 남동생이 그러지 말고 다른 개를 데려와 키워 보라고 권했지만, 단호하게 거절 했다. 그건 죽은 개들에 대한 배신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때 나는 죽은 개들에게 집착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딸아이가 강아지를 입양 하겠다고 했을 때 반대는 하지 않았다. 딸아이의 선택에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콩이가 왔다. 콩이라는 이름이 너무 흔한 걸 알고 있었지만, 딸아이가 붙여 준 이름이라 신경 쓰지도 않았다...

연이의 아킬레스건

나는 두 마리의 개와 한 마리의 고양이, 한 마리의 문조(새)와 살고 있다. 두 마리의 개는 모두 암컷으로 유기견 보호센터를 통해 각각 입양 했는데, 4살 정도로 추정되는 연이와 3살이 된 콩이 이다. 연이의 구조 당시 사진을 보면 꼬질꼬질한 노란 옷을 입고 웅크려 있는 모습이고, 엄마개와 함께 구조된 강아지였던 콩이는 안타깝게도 사진은 없다. 임시보호 중이던 동물병원으로 처음 연이를 데리러 갔을 때 연이는 우리(딸아이와 동행)가 자기를 데리러 온 걸 아는 것처럼 내 품에 찰싹 안겨 왔었다. 동물병원 직원이 말하길 " 몽쉘이는 겁도 많고 식탐도 많고, 질투도 많아요~" 병원에서 지어 준 이름이 몽쉘이었다. 롯데 몽쉘 케잌처럼 초코와 흰 색이 섞여 있어서 붙여진 이름 같았다. 연이를 데려올 당시에 집에는 ..

너를 키우기로 했다.

네 엄마와 난 사실 친한 사이는 아니었어. 네 엄마가 우리 카페를 드나든지 몇 달이 지날 때까지도 나는 네 엄마가 주로 어디에서 지내는지, 종일 어딜 그렇게 바쁘게 돌아 다니는지, 카페가 쉬는 날은 어디에서 식사를 하는지 아는 바가 전혀 없었어. 한동안 안 보여서 궁금해 하고 있으면 네 엄마는 우아하고 태연한 걸음으로 홀연히 나타나곤 했어. 나는 친하게 지내고 싶어 늘 악수를 청했지만, 네 엄마는 나를 무안하게 만들고 도도하게 먼저 자리를 떴어. 그래서 더 잘해주고 싶었는지도 몰라. 더 맛있는 걸 주고 싶었고 정수기에서 바로 따라 낸 깨끗한 물만 대접 했지. 바람이 점점 차가워지고 카페를 둘러 싼 밤나무들이 잎을 떨구기 시작했어. 산은 겨울이 더 빨리 찾아 오거든. 빨랫줄에 널 행주 바구니를 들고 카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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