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의 김치찌개 가게 사장노릇을 접고서 5개월가량 가사도우미를 해 본 적이 있다.
그 일을 꼭 해보고 싶었거나 그 일을 해야 할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 당근 알바를 뒤적이다가 청소클리너를 구하는 구인광고를 접했는데 내 집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집을 정리하고 청소해 보는 건 어떨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평소 집안을 꾸미고 쓸고 닦는 걸 좋아하다 보니 그런 호기심이 생기지 않았나 싶다.
일단 호기심이 발동하면 앞뒤 재지 않는 성격 탓에 그때에도 바로 클리너 업체에 전화를 걸었고 다음 날부터 나는 즉각 그 일을 시작했다.
앱을 통해 내가 원하는 지역에서 내가 일할 수 있는 시간과 페이를 보고 그 시간에 맞춰 고객 집을 방문하면 되는 일이었다.
기본적인 청소 매뉴얼은 유튜브로 꼼꼼히 숙지하고, 혹시 몰라 집에 있는 청소용품들을 챙겨서 첫 집을 방문했다.
고객이 집에 없는 상태여서 앱에 나와있는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두근거리는 맘으로 첫 집에 들어섰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터져 나온 나의 작은 비명소리.
워우~~!
작지 않은 평수였음에도 불구하고 현관은 발 디딜 틈 없이 어른과 아이의 사계절 모든 신발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내 신발을 한쪽 구석에 겨우 벗어 놓고 중문을 열었을 때 나는 아까보다 조금 더 커진 두 번째의 비명을 질렀다. 아이쿠~~~!!
거실은 아이들 장난감과 책, 옷과 이불이 널브러진 혼란의 도가니탕 그 자체의 모습이었다.
내게 주어진 네 시간 동안 그 집안을 청소하고 정리해야 한다니 정말이지 눈앞이 캄캄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앱에 나와있는 그 집 안주인의 요청 사항을 다시 한번 읽어보고 집에서 챙겨간 앞치마를 두르고 고무장갑을 꼈다.
그리고 정말이지 1분도 쉬지 않고 30평대의 아파트를 내 집처럼 치워 나갔다.
청소를 마무리하고 깨끗해진 집안을 둘러보았다.
처음에 본 집과는 분명히 다른 집이 되어 있었다.
거실 아트월에 걸린 가족사진 속 꼬맹이들의 인형과 장난감들은 제자리를 찾았고 젊은 부부의 옷과 신발들도 안정되었다. 무엇보다 가사도우미로서 첫 집을 무사히 청소해 냈다는 기쁨이 컸다.
그렇게 나의 가사도우미 첫걸음이 시작됐다.
고객의 니즈는 다양했다.
주방과 화장실에 특히 신경 써 달라거나, 세탁된 빨래는 어떻게 다루고 거실 바닥은 어떤 걸로 닦아 달라는 등의 디테일한 요구들이 있었고, 나는 나름 최선을 다해 그들의 니즈를 수용했다.
내가 일한 업체의 경우 청소상태를 확인한 고객이 도우미에게 점수를 주는 시스템이었는데 5점이 만점이고 평균 4.5만 넘으면 최우수 도우미로 분류가 됐다. (최우수 등급이 된다고 해서 어떤 베네핏이 있는 건 아니었다.)
처음 3주 정도는 평균 5점을 유지하며 최우수 상태였는데 어느 날 정말이지 3주 동안 가 본 집들 중 베스트 오브 베스트의 집을 다녀오고 나서 내 점수가 푹 고꾸라졌다.
열 평 남짓한 작은 연립이었는데 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음식물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요구사항란에 아침에 퇴근해서 자고 있으니 방청소는 하지 말아 달라는 내용이 있는 걸로 보아 집에 사람이 있는 건 확실했다. 집안은 빈 술병과 페트병, 방치된 고양이 용품과 치우지 않은 고양이 배변모래,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옷가지들과 배달음식이 말라붙은 플라스틱 용기로 넘쳐났다.
큰 소리를 내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음식쓰레기가 쌓인 주방부터 구석구석 청소를 해 나갔다.
세탁기를 세 번 돌리고 빈 병과 플라스틱 보따리를 양손에 들고 분리수거하러 나간 것만도 다섯 번 이상이었던 걸 아직도 기억한다. 냉장고에 붙여 놓은 사진 몇 장과 살림살이로 추측해 볼 때 혼자 사는 젊은 아가씨인 듯했다.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그렇게 엉망이 된 집에서 살고 있는 사람에 대한 측은지심이 생겨 나는 여느 집보다 더 최선을 다해 정리와 청소를 했다. 그리고 그 댓가로 그녀는 나에게 제일 낮은 점수를 주었다.
생각할수록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자존심 상해가면서까지 점수에 연연할 필요는 없는 일이었지만 사람의 감정이란 것이 그렇지만은 않았다.
고양이 모래에 수북이 쌓인 오래된 배설물까지 (고객의 특별한 요구가 있기 전에는 동물 배설물까지는 치우지 않아도 된다.) 정리해 놓고 니코틴에 찌든 화장실 타일 벽까지 물청소를 해 놓았는데 대체 왜?
일회성이 아닌 정기방문의 경우 일단 도우미가 한번 방문한 집은 그 고객이 거부하지 않는 이상 고정방문 하게 되어 있지만, 낮은 점수에 기분이 상해버린 나는 2주 뒤에 있을 재방문을 내 쪽에서 취소해 버렸다.
사실 점수 몇 점을 더 받고 덜 받고의 문제라기보다는 진심을 다하는 사람에게 핵펀치를 날리는 그녀를 위해 또 청소를 하러 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얼마가 지났을까.
비록 힘은 들었지만 다른 사람들 집도 맘껏 구경할 수 있고 깨끗해진 집을 보는 성취감도 느끼며 나름 그 일을 즐기고 있을 때쯤 클리너 업체로부터 문자가 한통 왔다.
어느 고객이 나를 지정해서 자기 집에 고정적으로 정기 방문을 해줄 수 있는지 문의가 들어왔다는 내용이었다. 주소를 보자마자 그때 야박한 점수를 준 아가씨라는 걸 알았고 나는 수락하지 않았다.
훼손 됐던 자존심이 조금 회복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다시 그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다섯 달 동안 나는 그 일이 아니었다면 해볼 수 없는 많은 일들을 경험했다.
작은 원룸부터 화장실이 여섯 개가 딸린 큰 집까지 가 보았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 보았다.
예쁜 찻잔에 따뜻한 차 한잔 내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 뒤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니며 닦아야 할 곳을 손가락으로 일일이 짚어주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자존심 상하는 말을 들은 적도 있고 직업적으로 나를 우습게 보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을 것을 알지만, 내가 선택해서 시작한 일이었고 나름 재미있었던 경험이었기 때문에 그때의 시간들에 대한 후회는 없다. 어떤 일을 해보든 모두 내 인생에 뼈와 살이 될 거라고 굳게 믿기 때문에...
글로나마 그때 내가 방문했던 여러 가정들의 평안과 행복을 진심으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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