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40년지기 베프가 있었다.
이름은 김정숙.
정숙이는 2021년 5월에 갑작스런 뇌출혈로 쓰러졌다. 평소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자기 관리에 열심인 친구였기에 갑자기 뇌출혈로 뇌사 상태가 됐다는 사실을 믿기가 어려웠다. 여러 병원을 거치다가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했다.
뇌사 상태로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정숙이는 긴 머리카락을 풀어 헤친 예쁜 바비 인형처럼 보였다. 평소 보기 좋게 태닝을 한 거처럼 가무잡잡 했던 피부는 형광등 불빛 때문인지 몹시 창백 했고 손과 발은 얼음장처럼 찼다.
나는 한참을 서서 울다가 시간이 다 됐다는 간호사의 말에 고개를 숙여 정숙이의 차디 찬 뺨에 얼굴을 대고 조용히 말했다.
"정숙아. 편히 가. 다음 생애에도 우리 꼭 친구 하자."
정숙이가 쓰러진 지 일주일 만에 장례를 치르게 됐고, 장례식장에서 동창들을 만나 한참을 울다가 바람 좀 쐬자며 친구들 몇명과 장례식장 옆에 있는 데크로 나갔다.
검은 상복을 입은 한 남자가 난간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고 있다가 떼로 몰려오는 아줌마 무리를 보고는 서둘러 계단을 올라갔다.
나는 편의점에서 커피를 사들고 갔고 다른 친구는 차에서 돗자리를 가져왔다.
데크에 돗자리를 펴고 둘러 앉아 정숙이를 추억하고 슬픔을 나누는 대화로부터 시작해서 우린 어느 새 한 친구의 재미난 에피소드를 들으며 깔깔 거리기도 하고, 코로나가 창조한 "살 확찐자" 따위의 실없는 농담도 해 가며, 모임 할 때 수다 떨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지금 우리가 뭘 하는 거지~' 라는 자각을 했지만, 며칠째 나를 잠식한 깊은 슬픔에서 벗어나 조금 편하게 숨이 쉬어지는 것도 같았다.
우리들은 그렇게 정숙이를 보냈다.
2월 어느날 저녁, 꽤 먼 길을 운전 해 찾아 온
정숙이와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일찌감치 가게 문을 닫고 김치찌개를 끓여 저녁을 먹었었다.
손재주가 좋고 못하는 음식이 없던 정숙이는
"네가 끓인 김치찌개가 내가 먹어 본 찌개 중에 제일 맛있어.난 어떻게 해도 이 맛은 안 나더라~"
하며 겸손하게 말했다.
내가 본 살아 있는 마지막 모습이었다.
정숙이가 죽은 지도 벌써 4년이 됐다.
화려한 외모, 발랄한 성격, 호탕한 웃음소리가 그립다.
"정숙아~ 그 곳은 어떠니?" 묻는다면
내가 아는 정숙이는 분명히 이렇게 말할 거다.
'친구야~ 먹고 싶은 거 있음 찾아 다니며 다 먹고, 가고 싶은 곳 있음 망설이지 말고 비행기 티켓 끊고, 배우고 싶은 거 있으면 빚을 내서라도 당장 배우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두려워 하지 말고 일단 저질러!!
행복을 미루지 마. 내일 죽더라도 미련 한 점 남지 않게..' 라고.
사랑하는 나의 친구야.
우리 또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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