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후 1시가 되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 온다. 오늘의 도시락은 전주비빔밥과 천도 복숭아 두 알. 여름감기를 거하게 앓는 중이라 도시락에까지 신경이 써지질 않아서 쿠팡에서 파는 냉동 비빔밥을 전자렌지에 데워 왔다.
콧물이 줄줄, 잔 기침이 있고 입맛도 없지만 차 뒷 자리에 지친 몸을 누이고 꾸역꾸역 밥을 씹어 넘긴다.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감기에 걸리고 보니 만사가 무기력하다.
검은 색 모하비 한대가 내 차 옆으로 부드럽게 주차를 한다. 운전석에서 남자가 내려 트렁크를 열고 유모차를 꺼낸다. 조수석에서는 아내로 보이는 여자가 하얗고 귀여운 포메라니안을 안고 내린다.
강아지가 너무 이뻐서 나는 밥 숟가락을 내려 놓고 그들을 본다. 부부가 포메를 다루는 손길이 너무나 섬세하다. 남자는 펼친 개모차 안에 잔잔한 장미꽃이 수 놓아진 분홍색 수건을 깐다. 포메는 암컷일거란 생각이 드는 건 내가 너무 고정관념에 찌들어 살아 온 탓이겠지. 여자는 포메의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고 조심스레 개모차 안에 포메를 내려 놓는다.
남자가 트렁크 안에서 개모차 위에 덮는 차양막을 꺼내 설치 하고 여자는 무늬가 없는 면 에코백을 꺼내 개모차 손잡이에 걸어 놓는다.
삐빅~ 차 문을 잠그고 부부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출입구로 도란도란 이야기 하며 걸어간다. 사랑스러운 모습이다. 나는 개를 워낙 좋아 하니까 저 모습을 사랑스럽다고 표현 하지만 동물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차며 한심하다고 할 것도 안다.
사랑스럽든 한심하든 그런 평가는 사실 불필요 하다.
남의 사생활은 그냥 인정해 주는 게 예의일테니까..
나는 숟가락을 들었다가 더 이상 밥이 넘어 가지 않을 거 같아 도시락 뚜껑을 닫는다. 뽀득뽀득 씻어 온 복숭아를 한입 깨문다.
상큼하고 풍부한 과즙이 입안 가득 퍼진다.
비록 여름감기에 지배 당해 골골 거리고 있지만, 그래도 오늘 역시 괜찮은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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