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곧 쏟아질 듯 흐린 날이다.
이틀간의 휴무가 지나가 버리기 전에 미용실에 다녀오기 위해 서둘러 집을 나선다.
내가 일하는 직장에서는 종일 모자를 쓰고 머리를 묶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나는 헤어스타일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워낙에도 펌을 해 본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할 수 없을 만큼 머리에는 큰 돈을 들이지 않는 편이기도 하고 굵은 반곱슬 머리라서 매직을 하거나 펌을 해도 티가 별로 안날뿐더러 머리 손질도 잘 못하는 똥손이라 내추럴한 스타일을 선호하는 척 하며 방치해 왔다는 표현이 딱 맞을 거다.
올해 초에 미용실을 다녀온 뒤로 반년이 지나는 동안 짧았던 머리가 꽤 길어져서 아침마다 드라이기로 말리기가 영 성가시고 귀찮았다.
길이를 좀 자르고 잔뜩 생겨난 흰 머리를 염색도 할 겸 예약을 안해도 되는 동네 작은 미용실을 찾아 갔다.
"안녕하세요~ 머리 좀 자를수 있을까요?"
"네~ 어서 오세요."
처음 보는 낯선 분이 자리를 안내해 준다.
"사장님이 바뀌셨나봐요?"
"바뀐지 꽤 됐는데..오랜만에 오셨지요?"
"그러게요. 제가 여길 다녀간지 꽤 됐네요."
검은 색 셔츠에 밑단을 살짝 접은 일자 핏 청바지.
검은 색 진 소재의 앞치마와 광택이 나는 검은 색 애나멜 플랫슈즈를 신고 등까지 내려오는 층을 많이 낸 갈색 생머리를 한 세련된 여사장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내가 미용실에서 제일 많이 듣는 말이 머리에 신경을 좀 쓰라는 말이다. 내 머리처럼 푸석거리는 반곱슬을 관리도 안하고 질끈 묶고 다니는 걸 보면 솔직히 내가 헤어 디자이너의 입장이라도 안타까운 마음이 생길거 같긴 하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또 그 소리를 듣는다.
그 말을 백번 들어도 싼 내 몰골이 정면으로 보이는 거울 속에 떡 하니 앉아 있다. 피식 웃음이 난다.
"네~ 신경을 좀 써야 되는데 그게 잘 안되네요."
염색을 마치고 젖은 머리카락을 드라이어 바람으로 말려 주면서 미용실 원장님의 원데이 클래스 강의가 시작 된다. 머리 말릴 때 어느 방향에서 어떻게 말려야 예쁘게 되는지, 곱슬의 경우 예쁜 컬을 만들려면 헤어브러쉬를 어떻게 사용하는 게 좋은지 등등..
똥손 탈출을 꿈꾸며 일단 잘 귀 담아 듣는다.
거금을 결제하고 명함 한장을 받아 들고 미용실을 나온다. 잘려 나간 머리카락의 무게만큼 발걸음도 가볍다. 시원한 바람이 한층 젊어진 내 검은 머리카락을 짖궃게 흐트러 놓고 지나가고 비를 머금은 하늘은 여전히 흐리다.
아... 그나저나 오늘 저녁은 또 뭘 해 먹는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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