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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니들이 김치찌개 맛을 알어?

김치찌개 집 사장으로 불리는10년 동안 나는 많이 변했다. 손에 물 마를 새 없이 고생을 했더니 그 곱던 손이 쪼골쪼골 할머니 손이 되더라~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하루는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들어와서 메뉴에도 없는 비빔국수를 시키는 남자 손님이 있었다. 김치찌개 전문점이라고 설명을 하고 내보낸지 두시간만에 그 손님은 다시 나를 찾아 왔다. 찌개 냄비를 올리는 가스렌지 불판을 번쩍 치켜 들고, 자신의 어깨에도 채 닿지 않는 작달만한 여사장의 멱살을 움켜 쥐는 그런 손님(?)을 만나는 일은 분명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또 어느 날은 멀쩡하게 생긴 젊은 여자 혼자서 반주를 곁들인 식사를 하고 나서는 이미 계산을 했다며 카드 대신 오리발을 내밀고, 급기야 식탁을 뒤집어 엎고 소주병을 깨 부수며 난동을 피우..

2. 니들이 김치찌개 맛을 알어?

이것저것 안 해 본 게 없는 나였지만, 그때까지 식당일을 해본 적은 없었다. 나름 음식 솜씨가 있다는 소릴 듣는 편이었지만, 돈을 받고 음식을 판다는 것은 경험이 없는 나 자신에게 큰 책임감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생각보다 손님이 너무 적었다. 평일은 근처 직장인들이라도 몇 명씩 찾아 왔지만, 비라도 내리는 주말이면 한 냄비도 못 팔고 퇴근하는 날도 종종 있었다. 내가 식당을 차린다고 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가 맛만 있으면 산골 오지에 차려놔도 사람들이 찾아 간다는 얘기였다. 외진 골목에 위치한 가게 자리도 문제였지만, 결국은 맛이었다. 빚을 내서 시작한 장사였지만, 국내산 채소를 쓰고 질 좋은 돼지고기를 사용했다. 이 집은 반찬 가짓수가 적다고 불평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지만, 김치찌개 가격이 워낙..

1. 니들이 김치찌개 맛을 알어?

적당히 쉬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일자리를 찾아야 할 타이밍이다. 당근 알바에 올라온 알바 자리 중에 내가 할만한 일들은 그닥 많지 않다. 나이제한이 없는 물류 관련 일이나 배송알바, 식당 보조, 주방 설거지와 서빙이 전부이다. 식당.. 3년 전까지 김치찌개 가게를 운영 했던 나는 한 곳에서만 10년이란 긴 시간 동안 김치찌개를 팔았다. 사실 많이 벌지도 못하면서, 월급쟁이 보다는 낫지 않겠냐는 주먹구구식 계산만으로 10년을 버텼다. 몸도 망가지고 나이도 열살이나 더 먹어 버린 뒤에 와서야 비로소 가게를 접고 징글징글한 그 동네를 떠날수 있었다. 징글징글 하다고 표현 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신도시에 비해 꽤나 낙후된 동네에서 장사를 했었는데, 점심 때 와르르 몰려 왔다 몰려 가는..

그 곳은 어떠니?

나에겐 40년지기 베프가 있었다. 이름은 김정숙. 정숙이는 2021년 5월에 갑작스런 뇌출혈로 쓰러졌다. 평소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자기 관리에 열심인 친구였기에 갑자기 뇌출혈로 뇌사 상태가 됐다는 사실을 믿기가 어려웠다. 여러 병원을 거치다가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했다. 뇌사 상태로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정숙이는 긴 머리카락을 풀어 헤친 예쁜 바비 인형처럼 보였다. 평소 보기 좋게 태닝을 한 거처럼 가무잡잡 했던 피부는 형광등 불빛 때문인지 몹시 창백 했고 손과 발은 얼음장처럼 찼다. 나는 한참을 서서 울다가 시간이 다 됐다는 간호사의 말에 고개를 숙여 정숙이의 차디 찬 뺨에 얼굴을 대고 조용히 말했다. "정숙아. 편히 가. 다음 생애에도 우리 꼭 친구 하자." 정숙이가 쓰러진 지 일주일 만에 장례를 치르..

일상 이야기 2024.06.16

너를 키우기로 했다.

네 엄마와 난 사실 친한 사이는 아니었어. 네 엄마가 우리 카페를 드나든지 몇 달이 지날 때까지도 나는 네 엄마가 주로 어디에서 지내는지, 종일 어딜 그렇게 바쁘게 돌아 다니는지, 카페가 쉬는 날은 어디에서 식사를 하는지 아는 바가 전혀 없었어. 한동안 안 보여서 궁금해 하고 있으면 네 엄마는 우아하고 태연한 걸음으로 홀연히 나타나곤 했어. 나는 친하게 지내고 싶어 늘 악수를 청했지만, 네 엄마는 나를 무안하게 만들고 도도하게 먼저 자리를 떴어. 그래서 더 잘해주고 싶었는지도 몰라. 더 맛있는 걸 주고 싶었고 정수기에서 바로 따라 낸 깨끗한 물만 대접 했지. 바람이 점점 차가워지고 카페를 둘러 싼 밤나무들이 잎을 떨구기 시작했어. 산은 겨울이 더 빨리 찾아 오거든. 빨랫줄에 널 행주 바구니를 들고 카페 ..

2015년 늦가을의 일기

밤공기가 차다. 봄비는 내릴 때마다 기온이 상승 하지만 가을비는 내릴 때마다 겨울로 다가간다. 올해도 어느새 또 이만큼 온건가.. 매년 느끼면서도 매번 놀란다. 이래서 사람은 지난 일을 쉽게 잊고 실수를 되풀이 하고, 했던 말을 잊고 또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다시 하면서도 이게 단순한 데자뷰인지 내 망각이 만든 반복인지 분간이 어려운가 보다. 문득 내 삶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내가 잘 살고 있는건지...이렇게 살아가는 게 맞는 건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생각을 해 볼 뿐 결론도 답도 없을 걸 알지만 그저 잠시 생각 해보는 거다. 그 생각의 끄트머리에서 어딘가로 멀리 떠나는 상상을 해 본다. 떠나게 된다면 손에 든 가방은 단촐하고 의상은 만추에 나오는 탕웨이처럼 수수하고, 흙바람에 날리는 건조한..

일상 이야기 2024.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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