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소설가 한강이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로 2024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예전에 읽은 [채식주의자]의 강렬한 이미지로만 기억하고 있던 한강의 수상 소식에, [소년이 온다]가 너무 궁금해져서 바로 예약주문을 했었다.
어제 드디어 배송된 책.
책을 받으면 거의 당일에 읽기 시작해 길어야 이틀이면 다 읽어버려야 직성이 풀리는데, 이 책은 왠지 첫 장을 넘기지 못하고 하루를 꼬박 표지만 만지작 거리며 보냈다.
막연한 두려움..
솔직히 5.18 민주화운동을 주제로 한 소설이라는 점에 살짝 겁이 났다.
불가피하게 서술될 수밖에 없는 잔인하고 폭력적인 내용들을 읽어나갈 용기가 선뜻 생기질 않았달까.
나는 그 유명한 범죄도시 시리즈 한편도 보지 못할 만큼 폭력적이고 끔찍한 것들을 싫어한다.
그런 나에게는 글을 읽으면서 만들어지는 내 머릿속 상상의 세계조차 두려울 수밖에..
두려움을 떨쳐내고 첫 장을 읽어 내려갔다.
1장부터 6장까지 각각의 주인공의 이야기 여섯 가지가 담겨 있다.
중학교 3학년인 동호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끔찍한 열흘을 함께 보낸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시간들이 담겨 있다. 읽는 내내 내가 넘기는 종이 한 장 한 장을 통해 그 고통의 일부가 손끝을 통해 느껴지는 듯했다.
상상할 수도 없는 무서운 일들..
그러나 분명히 이 나라에서 일어났던 일임은 틀림없다. 물론 다큐멘터리가 아닌 소설인 것은 맞지만, 팩트에 근거한 소설인 것도 분명하다.
책의 내용 중 제일 마음을 울렸던 두 부분을 옮겨본다.
[4장 쇠와 피 中
그들은 장전한 소총을 들고 의자와 의자 사이를 다니며, 자세가 바르지 않은 사람의 머리를 개머리판으로 쳤습니다. 재판소 밖에서 가을 풀벌레가 울고 있었습니다. 그날 아침 새로 받은, 세제 냄새가 풍기는 깨끗한 푸른색 수의를 입고서 나는 즉석 총살이란 말을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정말 닥쳐올 총살을 기다리듯 숨을 죽였습니다. 죽음은 새 수의같이 서늘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때 생각 했습니다. 지나간 여름이 삶이었다면, 피고름과 땀으로 얼룩진 몸뚱이가 삶이었다면, 아무리 신음해도 흐르지 않던 일초들이, 치욕적인 허기 속에서 쉰 콩나물을 씹던 순간들이 삶이었다면, 죽음은 그 모든 걸 한 번에 지우는 깨끗한 붓질 같은 것이리라고. ]
[6장 꽃 핀 쪽으로 中
네가 여섯 살, 일곱 살 묵었을 적에, 한시도 가만히 안 있을 적에, 느이 형들이 다 학교 가버리먼 너는 심심해서 어쩔 줄을 몰랐제. 너하고 나하고 둘이서, 느이 아부지가 있는 가게까지 날마다 천변길로 걸어갔제. 나무 그늘이 햇빛을 가리는 것을 너는 싫어했제. 조그만 것이 힘도 시고 고집도 시어서, 힘껏 내 손목을 밝은 쪽으로 끌었제. 숱이 적고 가늘디가는 머리카락 속까장 땀이 나서 반짝반짝함스로. 아픈 것맨이로 쌕쌕 숨을 몰아쉼스로. 엄마, 저쪽으로 가아, 기왕이면 햇빛 있는 데로. 못 이기는 척 한없이 네 손에 끌려 걸어갔제.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지만 손끝을 통해 전해오던 통증과 분노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다시는 지구 그 어디에서도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한다.
책 내용 중 한 구절을 인용하며..
"그러니까....우리는.. 고귀하니까.
(5장 밤의 눈동자 中)"